김응삼 ()

의약학
인물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별견어의, 내의원수의 등을 역임한 의관.
이칭
정보(鼎甫)
행촌(杏村)
이칭
덕삼(德三)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80년(숙종 4)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경주(慶州)
주요 관직
내의원내의|지중추부사|별견어의|내의원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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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의
조선후기 지중추부사, 별견어의, 내의원수의 등을 역임한 의관.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경주(慶州). 초명은 덕삼(德三), 자는 정보(鼎甫), 호는 행촌(杏村).

1699년(숙종 25)에 증광의과에 급제하여 내의(內醫)·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고, 1712년(숙종 38) 별견어의(別遣御醫)로 청나라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730년(영조 6) 빈궁의 질병이 완쾌되자 그 공로로 상을 받았다. 그는 23년간 내의원 수의(首醫)로 봉직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의과선생안(醫科先生案)』
『한국의학사』(김두종, 탐구당,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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