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광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지김해부 진례성 제군사 명의장군으로 불렸던 호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지김해부 진례성 제군사 명의장군으로 불렸던 호족.
생애 및 활동사항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 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文>에 의하면 지김해부진례성제군사명의장군(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明義將軍)의 칭호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 세력가로서 김해읍에서 35리 가량 서쪽으로 창원의 경계지대에 진례성을 쌓고 그 성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병(私兵)의 지휘자로서 인근지방을 지배하였다.

그는 상당히 교양이 높은 가문에서 성장하여 신라왕실에 충성을 다한 김해소경(金海小京)의 관리였거나, 아니면 신라 말기에 새로 대두한 구가야왕족의 후예 신김씨(新金氏)로서, 세력을 떨치다가 907년(효공왕 11) 소충자(蘇忠子)·소율희(蘇律熙) 형제가 등장하기 이전에 몰락하였다. 봉림사의 건립을 후원하여 선종9산의 하나인 봉림산파(鳳林山派)의 후견인 구실을 하였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朝鮮金石總覽』上
「신라말 김해지방의 호족세력과 선종」(최병헌, 『한국사론』4,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78)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