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신이나 경력은 잘 알 수 없으나, 884년(헌강왕 10) 당시의 관작은 검교 원외랑 수한림랑 사비은어대(檢校員外郞守翰林郞賜緋銀魚袋)였다.
이 해 헌강왕 명령을 받아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고변(高騈)의 막하에서 도통순관(都統巡官)으로 활약하고 있던 최치원(崔致遠)을 귀국시키기 위하여 이른바 입회남사(入淮南使)로서 당나라에 파견되었다.
당시 사절단에는 최치원의 동생인 서원(棲遠)이 녹사(錄事)로서 동행하였는데, 그들은 중국 양주(揚州)에 도착하였다. 최치원의 문집인 『계원필경집』을 보면 이 때 김인규·최치원일행의 귀국길을 짐작할 수 있다.
즉, 그들은 양주에서 회남운하를 따라 초주(楚州) 산양현(山陽縣)으로 향하였고, 그런 다음 초주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서 산동반도(山東半島) 끝 등주(登州) 등모(登牟)에 이르렀다. 그들은 이곳에 있는 참산(讒山: 현재 이름은 之罘山)에 올라 산신에 제사한 뒤 황해를 건너 귀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