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을사조약 체결 후 자신회를 조직하여 을사오적의 처단을 계획한 항일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그리하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동지의 규합 및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거사에 필요한 자료를 마련하기 위하여 전 궁내부대신 이용태(李容泰)를 설득하여 1만 7천 냥의 운용비를 구한 뒤 기회를 기다리다가 1907년 3월 15일 아침, 5적신이 입궐할 때 조를 나누어 길목에서 지키다가 일제히 처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재차 거사를 계획하던 중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동지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인영 · 오기호와 함께 같은 해 4월 평리원(平理院)에 자진 출두하여 자현장(自現狀)을 내었다.
이 때 그들은 의거동기를 뚜렷이 밝히면서 의사로서의 기개를 보였다. 이로 인하여 평리원의 재판에서 유배 5년형을 선고받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계년사(大韓季年史)』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 7(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 『독립운동사자료집』 1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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