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이에 격분하여 나인영(羅寅永) · 오기호(吳基鎬) 등과 함께 5적을 처단하기로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자신회(自新會)를 조직하여 동지의 규합 및 결속을 강화하는 한편 거사에 필요한 자료를 마련하기 위하여 전 궁내부대신 이용태(李容泰)를 설득하여 1만 7천 냥의 운용비를 구한 뒤 기회를 기다리다가 1907년 3월 15일 아침, 5적신이 입궐할 때 조를 나누어 길목에서 지키다가 일제히 처단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재차 거사를 계획하던 중 사실이 드러나게 되자 동지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나인영 · 오기호와 함께 같은 해 4월 평리원(平理院)에 자진 출두하여 자현장(自現狀)을 내었다.
이 때 그들은 의거동기를 뚜렷이 밝히면서 의사로서의 기개를 보였다. 이로 인하여 평리원의 재판에서 유배 5년형을 선고받아 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