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림사무구정탑원기(昌林寺無垢淨塔願記)」와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文)」의 찬자(撰者)이다. 825년(헌덕왕 17)에 입조사(入朝使) 김흔(金昕)을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한 김윤부(金允夫)·박양지(朴亮之) 등 12인의 유학생 중 한 사람이다.
이들은 당나라의 수도에 머물면서 숙위하고 국자감에 입학하면 홍로시(鴻臚寺)에서 양식을 대줄 것과, 먼저 유학하고 있던 최이정(崔利貞)·김숙정(金叔貞) 등을 돌려보내 주기를 청하니 당나라에서 들어주었다.
855년에는 한림랑(翰林郎)으로 추성군태수(秋城郡太守)에 있으면서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문」을 제찬(制撰)하는 등, 9세기 중엽에 문한(文翰) 계통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특히, 안정복(安鼎福)은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 그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간 김윤부·박양지와 더불어 당나라의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한 것으로 추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