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상덕(相德). 강원도 김화 출신.
1908년에 고향인 김화에서 신창학교(新昌學校)를 세워 민족정신을 선양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연희전문학교 학생으로서 이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받던 중 보석으로 출옥하였다.
출옥한 뒤, 권인채(權仁采) 등과 함께 대한독립애국단의 조직에 관하여 협의한 뒤 철원으로 내려와 박연서(朴淵瑞)·강대려(姜大呂)·김완호(金完鎬) 등과 함께 철원군단(鐵原郡團)을 조직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상해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단체로서 본부를 서울에 두고 재정자금 모집 및 조달활동을 폈는데, 그 지부로 조직된 철원군단은 그뒤 강원도단(江原道團)으로 발전하였고, 강원도내 각 군에 군단을 설치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대한독립애국단은 이밖에도 충청도와 전라도에 지부를 조직하였으나, 강원도단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여 보통 철원애국단이라고 불리었다.
1920년초 재정자금 수합활동을 전개하던 중, 이 단의 조직과 활동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단원들과 함께 붙잡혔으며, 이어 징역4년형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