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응덕(應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32년(영조 8)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주요 관직
대사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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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간, 경상도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응덕(應德). 김호(金灝)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김상옥(金相玉)이고, 아버지는 김묵(金默)이며, 어머니는 교리 신정하(申靖夏)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53년(영조 29)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759년(영조 35) 성균관 유생으로 있으면서 통독(通讀)과 제술(製述) 시험에 1등을 하여, 그해 식년 문과 바로 나아가 을과로 급제하여 곧 한림(翰林: 藝文館檢閱)에 제수되었다.

그 뒤 은산(殷山)·평택(平澤)의 수령으로 있으면서 고을을 잘 다스려 왕의 신임을 얻었고, 경직에 복귀하여서는 홍문관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세손(世孫)의 교육에도 참여하였다. 관계에 진출한 지 10년 만에 당상관으로 승진하여 승지·대사간을 역임한 뒤 특히 지방관으로서의 재질을 인정받아 경상도관찰사로 나아갔다.

정조가 즉위하자 대사헌으로 외척의 화를 우려한 상소를 올렸는데, 도리어 외척처벌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탄핵을 받아 전라도 해남(海南)에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대사헌을 지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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