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예산 출신. 1915년 7월에 결성된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아산·보령 등지에 사는 부호의 군자금 수합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인천에서 곡물상을 경영하며 연락거점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만주에서 우재룡(禹在龍) 등과 독립을 위한 격문·포고문을 작성하여 국내로 발송하여 독립운동의 기풍을 진작시켰다.
1918년 대한광복회의 조직이 일본경찰에게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7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