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 ()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부안, 김제, 군산, 익산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부안, 김제, 군산, 익산 부분
인문지리
지명
전북특별자치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중앙부의 서쪽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은 동진강을 경계로 정읍시 · 부안군, 북쪽은 만경강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 · 군산시, 서쪽은 황해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40′∼127°05′, 북위 35°39′∼35°55′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44.80㎢이고, 인구는 8만 872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4개 면, 4개 행정동(30개 법정동), 542개 행정리(121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서암동에 있다.

자연환경

동남부에 노령산맥의 서사면에 해당하는 높이 500∼700m의 산지가 분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전 지역이 대체로 해발고도 50m 미만의 구릉지와 저평한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동남부 산지는 중생대 쥐라기의 편마상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남부 산지에는 모악산(母岳山, 794m)을 비롯해 국사봉(國士峰, 543m) · 상두산(象頭山, 575m) · 구성산(九城山, 488m) 등이 솟아 있다. 그 밖에 황산면의 황산(凰山, 134m)과 용지면의 사창산(社倉山, 63m), 북서쪽 서해연안의 봉화산(烽火山, 80m) · 진봉산(進鳳山, 72m) 등 100m 내외의 산지가 있다.

모악산지에는 함금석영맥(含金石英脈)이 많아 산금광산이 있었으며, 여기에서 발원한 원평천(院坪川)과 두월천(斗月川) 유역인 금구면 · 금산면 등은 사금산지로 유명하였다. 북서해안의 산지에는 선캄브리아기의 결정편암이 분포한다. 이상의 산지를 제외하고는 동진강 · 원평천 · 만경강 주변의 광대한 충적평야로 이루어진 김제 · 만경평야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시의 북쪽과 남서쪽 경계를 이루며 황해로 유입되고, 그 밖에 작은 하천들인 모악산지에서 발원한 원평천과 두월천, 백산저수지에서 발원한 신평천도 황해로 흘러든다. 또한 시의 북동쪽에는 부용천이 북류해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은 감조구간이 길기 때문에 하류에 배수갑문을 설치해 바닷물의 유입을 막고 농업용수로 이용한다.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는 옥구반도와 변산반도 사이에 위치한 만입부로 우리나라 최대의 간석지가 발달해 있다. 이들 간석지에 대한 간척활동이 일제강점기 이후 활발히 이루어졌으며, 광활면은 이 때 간척으로 새로이 형성된 면이다. 현재 새만금간척사업이 진행되고 있어서 사업이 완료되면 이 간석지는 모두 매립될 것이다. 도서로는 서해안에 소한가도와 대한가도의 2개의 무인도가 있다.

남부서안형 기후구에 속하며, 바다의 영향으로 내륙에 비해 겨울철 기온은 높고 여름철 기온은 낮아 연교차가 작다. 연평균기온 12.5℃, 1월 평균기온 -1.5℃, 8월 평균기온 25℃이며, 연강수량은 1,200㎜이다.

역사

구석기시대의 유물은 발견된 적이 없으나, 신석기시대 말기에서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은 김제시내의 각처에서 발견되었다. 즉, 간돌칼이 출토되고 벽골제 발굴조사 당시 유구석부(有溝石斧)가 발견되었으며, 금산면 일대에 남방식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김제지역에는 이미 청동기시대에 매우 발달된 농경문화가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서, 50여 개의 부족국가 중 가장 방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벽비리국(辟卑離國)과 구사조단국(臼斯鳥旦國)이 이 곳에 있었다고 한다. 백제가 마한을 병합한 뒤 이 곳은 벽골군(碧骨郡)으로 바뀌었고, 이 때를 전후해 벽골제가 축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덕왕 때 벽골군을 김제군으로 바꾸었으며, 아울러 백제시대 수동산현(首冬山縣)을 평고현(平皐縣)으로, 두내산현(豆乃山縣)을 만경현으로, 내리아현(乃利阿縣)을 이성으로, 무근촌현(武斤村縣)을 무읍(武邑)으로 고쳐 김제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그리고 구지지산현(仇知只山縣)을 금구현(金溝縣)으로 고쳐 전주의 영현으로 만들었다.

599년(법왕 4)에는 유명한 금산사가 창건되었으며, 766년(혜공왕 2)에 진표(眞表)가 금산사를 중건하였다. 그 뒤 금산사는 미륵신앙, 곧 신라 오교의 하나인 법상종(法相宗)의 근본 도량으로서 이 지역 불교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편,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그의 아들 신검에 의해 유폐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940년(태조 23)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중앙집권체제를 시도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정비했는데, 김제군은 고려 초 전주 속현으로 되었다가 1106년(예종 1)에 감무를 두었다. 1143년(인종 21)에는 현령관을 두고 평고현을 속현으로 거느리게 되었다.

신라시대 전주의 영현이었던 금구현은 1170년(의종 24)에 이의방의 외향이라 해 현령관으로 승격되어 거야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그리고 무읍은 부윤현(富潤縣)으로 고쳐 임피현에 내속시켰다가 뒤에 만경에 이속하였다.

1403년(태종 3)에 김제군 또는 벽성군(碧城郡)으로 복칭되었는데, 이것은 이 군 출신이었던 명나라 환자(宦者) 한첩목아(韓帖木兒)의 청에 따른 것이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김제군의 호구는 409호에 인구는 2,605명이었다. 1620년(광해군 12) 호조의 주청으로 만경군(萬頃郡)이 김제군의 관할로 영속되었다.

그러나 1622년에 전주로 이속되었다가 1636년(인조 14) 다시 만경현으로 복현되었다. 1637년에 만경향교, 1676년(숙종 2)에 금구향교가 각각 중건되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남하하는 왜적을 무찌른 금구대첩(金溝大捷)이 이 곳에서 있었다.

조선시대 인물로는 임진왜란 때 웅치(熊峙)에서 왜구를 격퇴하다 전사한 정담(鄭湛)을 비롯해 병자호란 때 전라병사 김준룡(金俊龍)과 함께 경기도 용인에서 큰 전공을 세운 나형(羅珩)이 있다. 조선시대 말기인 철종 때에는 전국적인 민란이 발생했는데, 금구지방에서도 수백 명의 농민들이 삼정의 문란과 지방관리의 행패를 들어 민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부터 파급되었던 농민봉기는 1894년(고종 31) 동학혁명으로 이어졌는데, 김제지방에서는 김봉년(金奉年) · 김덕명(金德明) 등 2,000여 명이 이에 호응해 백산에 진을 치고 관군에 대항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만경장날인 4월 4일을 기해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에 가담하였다.

근대의 인물로는 한말의 지사였던 장태수(張泰秀),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 때 선두에 서서 투쟁하면서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정한조(鄭澣朝), 독립투사인 정현섭(鄭賢燮)과 이 지방 교육의 선구자인 조재돈(趙在敦) 등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만경군과 금구군이 김제군으로 통합되어 17개 면이 되었다. 1931년 김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35년 면 폐합으로 1개 읍 15개 면이 되었다.

광복 후 1949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진봉면을 분할, 광활면을 신설함으로써 1읍 16개 면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각급 관청과 학교 · 주택이 불탔으나, 전후 복구사업실시와 1970년대의 새마을사업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1989년 김제읍 · 월촌면 전역과 황산면 · 백산면 일부가 김제시로 승격되어 김제시 7개 동과 김제군 15개 면으로 분리되었다. 1990년 8월 1일 봉남면 서정리 · 양전리 · 도장리의 3개 리가 봉황동으로 편입되었으며,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김제시와 김제군이 새로운 김제시가 되었고, 같은 해 3월 2일에는 만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8년 9월 26일 요촌동과 서흥동을 요촌동으로, 신풍동과 봉황동을 신풍동으로, 교동과 월촌동을 각각 통합하였다.

유물 · 유적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의 고인돌군을 비롯해 성계리 신암마을의 고인돌군, 구월리 어유마을의 고인돌군 등 11기의 고인돌이 산재해 있다.

성터로는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을 토벌하기 위해 신라군이 주둔했다는 교동의 성산성터, 부량면의 명금산(鳴琴山) 토성터, 만경읍 성터, 성덕면 성덕리의 성덕산토성터, 금구면의 산성터, 황산면 난봉리의 도리봉 성터, 금산면 선동리의 상두산성터, 금산사 성터 등이 있다.

봉수대지(烽燧臺址)로는 남쪽으로 부안의 계화도(界火島)와 북쪽으로 옥구현의 사자암(獅子巖)을 연결하는 길곶봉수대지(吉串烽燧臺址)가 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삼불암(三佛庵) · 흥복사(興福寺) · 망해사(望海寺) · 문수사(文殊寺) · 귀신사(歸信寺) · 금산사(金山寺) 등이 있다. 금산면 금산리의 금산사 경내에는 금산사 미륵전(국보, 1962년 지정) · 금산사 대장전(보물, 1985년 지정) · 금산사 노주(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석련대(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혜덕왕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금강계단(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심원암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 금산사 석등(보물,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금산면 청도리의 귀신사에는 귀신사석탑, 귀신사부도, 귀신사석수가 있으며, 월촌동에 재궁리석등이 있다. 귀신사석탑, 귀신사부도, 귀신사석수는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재궁리석등은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사지로는 성덕면 대목리의 용호사지(龍虎寺址)와 석동리의 난와사지(蘭瓦寺址)가 있다.

유교 유산으로는 교동에 김제향교와 김제향교대성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 금구면 금구리에 금구향교와 금구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만경읍 만경리에 만경향교와 만경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다.

또한 갈공동에 1652년(효종 3)에 세웠다가 1868년 서원철폐로 훼철되었으나 뒤에 중건한 백석서원(白石書院)을 비롯해 교동에 용암서원(龍巖書院), 백산면 하정리에 삼현서원(三賢書院), 진봉면 두곡리에 두곡서원 등 20여 개의 서원과 사우가 있다.

관아로는 1699년(숙종 25)에 중창되고 1881년(고종 18)에 중수된 교동의 김제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과 1667년(현종 8)에 창건된 김제내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가 있다.

시도무형유산으로는 향토술담기 송순주(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 김제농악 설장고, 상쇠(전라북도무형문화재, 1996년 지정), 악기장 장고제작(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5년 지정), 완제시조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5년 지정), 단청장(전라북도 무형문화재, 2007년 지정), 탱화장(전라북도무형문화재, 2002년 지정)이 있다.

고가로는 조선 말기의 실학사상가로서 황현(黃炫)과 함께 호남삼절(湖南三絶)로 불리던 이기(李沂)의 생가와 백산면 상정리의 이석정선생생가(전라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가 있고, 금구면 상신리에는 장태수선생유물(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봉남면 행촌리의 김제 행촌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종덕리의 김제 종덕리 왕버들(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이 있으며, 신풍동에는 팔효사 은행나무(전라북도 기념물, 1996년 지정)가 있다.

또 제언(둑)으로 우리 나라에서 쌓은 것으로 가장 오래된 벽골제지(碧骨堤址)가 있는데, 김제 벽골제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벽골제는 신라 흘해왕 때 쌓았다고 하며 이 외에도 50여 개의 크고 작은 제언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404년(태종 4)에 창건해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35년(인조 13)에 중건한 김제향교가 최초이다. 이어 1407년 송전리(지금의 만경읍 몽산리)에 창건했다가 1637년 만경리로 옮긴 만경향교(萬頃鄕校)와 금구면 금구리에 1390년에 창건해 1404년에 중건하고 1675년에 금구리로 옮긴 금구향교(金溝鄕校)가 있다.

또한 교동에 1488년(성종 19)에 세운 용암서원(龍巖書院), 성덕면 묘라리에 1574년(선조 7)에 세운 남산서원(南山書院), 1577년에 세운 저산서원(楮山書院), 1602년에 세운 회동서원(檜洞書院), 1634년에 세운 지음서원(芝陰書院), 갈공동에 1652년에 세운 백석서원(白石書院), 백산면 학당리에 1654년에 세운 학당서원(學堂書院), 1844년에 세운 삼현서원(三賢書院), 1827년(순조 27)에 세운 구암서원(龜巖書院) 등은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기 이전까지 많은 유생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아울러 1653년에 팔효사(八孝祠), 1575년에 구성사(九成祠), 1663년에 육송사(六松祠) · 낙양사(洛陽祠), 1573년에 쌍계사(雙溪祠)를 창건해 유생들이 재실에 기거하면서 교육을 받았다.

신교육기관으로는 1908년 김장호(金漳昊)가 백구면에 신명학당(新明學堂)을 설립, 개교했는데 뒤에 치문보통학교(致文普通學校)로 개칭되었다. 이 보통학교는 오늘날 치문초등학교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한편, 같은 해에 김제중앙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삼성학교가 세워졌고, 1910년에는 이낙조(李樂祖)가 지금의 공덕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호성학교를 개교하는 등 많은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중학교로는 1947년에 설립한 김제공립초급중학교가 1951년 김제중학교로 되었고, 1941년 김제공립고등여학교가 개교해 여학생의 교육을 담당했으며, 뒤에 김제여자고등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6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0개교가 있으며, 한국폴리텍V대학이 있다.

또한 시립도서관(만경분관 포함)과 원평공공도서관이 있어 이 지역의 교육 ·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문화행사로는 벼 재배의 유구한 역사를 되새기기 위해 국악잔치 · 농악놀이 · 단야뽑기 등을 경연하는 벽골제(碧骨祭)가 매년 시행되어 왔으며, 매년 음력 9월 9일을 시민의 날로 제정하고 이 날을 전후해 벽골제행사와 병행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또한 지평선축제 · 벚꽃축제 · 포도축제와 같은 다양한 문화관광축제도 매년 열리고 있다.

1966년에는 김제국악원을 설립해 국악의 이해와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제문화원은 사단법인으로 지방문화진흥을 위해 발족해 이 지방 향토문화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또한 벽골제의 복원과 함께 우도농악관과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을 건설, 국내 유일의 동진수리민속박물관을 건립하였다.

금산사가 위치하고 있는 명산 모악산 주변에는 과거 신흥종교와 무속종교가 크게 번창했으나, 현재는 증산교 · 대순진리교 등의 교당이 있다.

민속

농업을 주생활로 하는 이 지방에는 농경문화 속에서 이루어진 벽골제의 쌍룡놀이와 풍년을 비는 마을당제 때 행하는 선돌줄다리기가 유명하다. 또 김제의 농악놀이는 옛날 전라우도에서 이름이 있었으며,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벽골제쌍룡놀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곳 부량면에는 백제 때 농경지의 수리시설로서 쌓은 벽골제가 있었는데, 그 아래 두 개의 용추(龍湫)에 백룡과 청룡이 살고 있었다. 백룡은 성질이 양순해 수리시설의 제방을 보호했는데, 청룡은 심술궂어서 때로 성을 내어 노도(怒濤)를 일으키면 제방이 무너지곤 하였다.

신라 원성왕 때 무너지기 직전에 있는 제방을 수축하기 위해 조정에서 기술감독으로 원덕랑(元德郎)을 보냈다. 벽골태수 유품(由品)의 딸 단야(丹若)가 원덕랑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원덕랑의 약혼자 월내(月乃)가 멀리 경주에서 찾아왔다. 이 때 청룡이 성을 내어 백룡과 싸움이 벌어지고 제방이 무너지기 직전에 이르렀다.

당시에는 이렇게 되면 처녀 하나를 청룡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무사하게 된다는 풍습이 있었는데, 태수가 낭자 월내를 밤중에 보쌈해 용추에 넣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것을 미리 알게 된 단야가 그를 대신해 제물로 희생되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이 곳 주민들은 단야의 거룩한 연정을 기념하는 뜻에서 해마다 이 축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쌍룡놀이의 내용은 벽골제 밑에서 백룡과 청룡이 싸우다가 백룡이 패하는 광경과, 단야가 청룡 앞에서 제방의 영원한 보호와 원덕랑의 성공을 빌면서 희생되는 광경을 놀이로써 연출하는 것이다.

선돌줄다리기는 벽골제를 쌓고 해마다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입석을 세웠다는 설과, 벽골제 사이에 당재와 토끼재를 연결하는 능선이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어 터가 세기 때문에 이를 누르기 위해 김제동헌에서 입석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삼국시대의 유물로 내려오는 이 돌 앞에서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동쪽 하늘에 떠오르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이 때 쓰이는 줄은 5, 6척 되는 큰 동아줄을 만들어 이를 원줄로 하고, 여기에 개인의 손아귀에 들어 잡아당길 수 있는 작은 줄을 수없이 매 둔다. 줄은 남성과 여성을 뜻하는 수줄과 암줄로 나누어 만드는데, 줄의 머리에 모두 고리모양을 만들어 남성줄의 고리가 여성줄의 고리에 꿰어 들어가게 하고, 고리에 비녀장을 꿰어 두 줄을 연결시킬 수 있게 한다.

정월대보름날 밤 달이 뜰 무렵에 마을의 남녀가 모두 모여, 동쪽의 남성줄 머리에는 남자 한 사람을 태우고 서쪽의 여성줄 머리에는 여자 한 사람을 태운 뒤, 양편에서 줄을 메고 풍물을 울리면서 행진하다가 중앙 선돌 앞에서 양편이 서로 만나 두 줄의 머리에 있는 고리를 연결해 줄다리기를 한다.

남녀가 섞여 줄다리기를 하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로 변장하는 일이나, 또는 남녀의 풍기문란을 막기 위해 정절부인 중에서 금란사(禁亂使) 2명을 선정해 규율 단속을 한다. 이 줄다리기는 여성측에서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해 남성측에서 짐짓 져 주는 것이 상례이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선돌에 감겨 있던 묵은 줄을 풀고 새 줄로 감아둔다. 그리고 선돌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축문을 읽으면서 당산제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술과 떡을 나누어 먹고, 석주의 주변을 돌면서 풍물놀이를 즐긴다.

이 밖에도 이 지방의 풍물놀이로서 농악의 전형적인 우도굿놀이가 유명하다. 이 곳에서는 명절이나 7월 호미씻이 때 각 마을 단위의 농악놀이도 성행하지만, 특히 추석에 두 마을의 줄다리기 경합과 동시에 농악놀이 경연이 매우 극렬하였다. 이 농악놀이 경연에서 지는 마을이 이기는 마을의 세금을 부담하는 경합까지도 한 적이 있었다. 이 놀이는 민족항일기 말에 중단되었고, 지금은 각 마을 단위의 농악놀이가 있을 뿐이다.

동제로는 부량면 대장마을 당산제, 봉황면 난봉리 당산제, 금구면 선암리 유령당산제, 금산면 금산리 산신제 등이 있다. 이들 제를 지내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정초에 풍물을 치고 마당밟기 · 당산굿치기 등을 한다. 동제는 대개 놀이와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나, 해가 갈수록 쇠퇴하고 있는 형편이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유래전설이 많고 특히 벽골제와 관련된 전설이 유명하다. 「쌍룡추와 벽골룡전설」은 고려 고종 초기의 인물로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趙連璧)과 관련된 것이다. 원평천의 포교(浦橋) 근처에 있는 초혜산(草鞋山) 북단의 용추(龍湫)에는 백룡이 살고 있었고, 연포천(連浦川) 앞 용골마을 남단의 용추에는 청룡이 살고 있었다.

조연벽이 어렸을 때 꿈에 백의노인이 찾아와 자기는 벽골대제를 수호하는 백룡인데, 외지의 흑룡이 습격해 자기 집을 빼앗으려 하니 구원해 달라고 하였다. 이튿날 백룡이 흑룡과 싸울 때 조연벽이 활을 쏘아 흑룡을 죽였다. 그러자 백룡은 조연벽의 후손을 대대로 흥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보은으로 조연벽은 이름이 세상에 크게 드러났으며 그 자손도 번창했다는 것이다.

「부잣집 손부(孫婦)와 이랴소리 전설」은 청하면의 장산리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마을에 천석꾼 김씨가 손자며느리와 함께 살았는데, 이 손부가 기운이 무척 세어 여장군으로 소문이 나자, 이를 조정에서 알고 손부를 죽일까 두려워한 김부자는 손부를 야반도주하게 하였다.

손부는 많은 의복과 곡식을 소의 등에 싣고 떠났는데, 청하산 고갯길을 소가 넘지 못하였다. 이에 끙끙대는 소를 짐을 실은 채로 번쩍 들어 자기 머리에 이고 걸어가자, 머리 위에서 배가 눌린 소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손부는 소가 지칠 때마다 머리에 이고 갔는데, 소가 더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고는 소가 지칠 때마다 “이랴, 이랴.” 하고 다그치며 고개를 넘었다. 그 뒤로 ‘이랴’가 소를 다그쳐 몰 때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승려와 아름다운 여인이 혼인해 불도에 정진했다는 「부설거사(浮雪居士)와 묘화부인(妙花夫人) 전설」, 부안군의 형제산이 풍랑으로 떠다니다 이 곳에 정착해 울었다고 해서 ‘울엉산’이라고도 하는 이야기 「명량산전설(鳴良山傳說)」, 「입석산(立石山)과 와석산(臥石山)싸움전설」, 「구렁이와 흥복사(興福寺) 전설」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에 구전되는 민요에는 노동요가 많은데, 평야지대이므로 농업노동요인 들노래가 중심이 된다. 들노래의 전승상태가 좋은 곳은 만경읍 대동리로, 모를 내기 전 논고르기에서 벼를 베어 내기까지 전 과정의 노래가 잘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노래」는 “패랭이 꼭지에다/장화를 꽂고서/마호라기 춤이나 추어보세/여 · 이여 · 어여허 · 여루우/상 · 사아 뒤 · 이여……”라고 해 후렴이 ‘상사디어’계이면서 앞뒤 여음이 풍부하고, 느린가락 · 빠른가락이 모두 있다.

「논매기노래」는 “……바람불고 눈비올 줄 알면/어느 뉘가 빨래질을 갈까/나아 · 하아 하아 · 헤 · /헤 · 헤어헤 에에헤에 헤헤헤/노호오오리 헤 · 에이 허 · 허리가/산아지로 고으나 에헤에에야……”로 후렴이 「만경산타령」과 비슷하고, 풍부하면서도 세련되었다.

「벼베기노래」도 어느 지역보다 가락이 세련되었고, 「등짐노래」라고도 하는 벼를 져내는 노래도 “오오 · 허어 · 오/어허 · 어허 · 오호호/바늘같은 몸에다가/황소같은 짐을 싣고서/이 고개를 어이 넘어 갈꺼나……”라고 해 노동의 힘듦을 내용으로 하면서도 여음이 풍부하다.

「등짐노래」 · 「김매는 노래」 등은 앞소리 · 뒷소리의 교환창으로 부르는데, 받는 소리는 “아허허 허아하 에헤 · 에하 · ”, “아헤 · 에 에헤야 에헤오호” 등 모두 다양한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풍부한 가락으로 부른다.

그 밖에도 「메물노래」 · 「지층개노래」 · 「나물노래」 · 「담배노래」 등이 있는데, “담장안에 담뱃모를 붓어서/낮이로는 볕내쐬고/밤으로는 이슬맞어/점점이 자라나니……”의 「담배노래」는 농사 짓는 모습, 식물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담고 있다. “신통방통 고부랑통/인천 소금통/서울 오줌통/일본놈 장통/서양놈 우유통……” 등 어희요 계통의 「풍소요」가 많으며 「꼬리따기」 · 「다리빼기노래」 등의 동요도 있다.

산업 · 교통

만경강과 동진강 하류의 김제 · 만경평야를 끼고 있는 우리 나라 제1의 곡창지대이다. 2008년 현재 총경지면적은 2만 8,325㏊로 경지율이 52.4%에 달하며, 그 가운데 논이 2만 3,977㏊로 83.8%를 차지하여 벼농사 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진다. 시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논이어서, 농가 1호당 경지면적이 2.2ha로 영농규모가 상당히 크다.

논은 간척지인 진봉면 · 광활면 일대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이 경지정리가 잘 되어 있고, 수리안전답으로 농업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광활방조제에서 생산된 쌀은 철 성분이 많아 김제 광활쌀로 유명하다.

부량면에는 삼한시대 이후 오랜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섬진강 상류에 축조한 운암제(雲巖堤)는 광활면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수리시설이었다. 이 밖에도 금구면에 대율저수지, 백산면에 백산저수지 등이 있다.

쌀을 중심으로 보리 · 감자 · 채소류 · 양송이 · 잎담배 · 인삼 등이 생산되며 양잠이 이루어진다. 백산면 · 용지면 · 금구면에서는 고구마 · 감자가 많이 생산되고, 식량작물 외에 백산면 · 만경읍 · 용지면에서는 무 · 고추 · 수박 등이 생산된다. 전주시 · 익산시와 가까운 용지면 · 백구면에서는 근교농업으로 시설채소재배도 활발하며, 성덕면 · 백산면 · 부량면은 도내에서 양송이 주산지이다.

야산지대에서는 복숭아 · 배 · 포도 등의 과수재배가 활발하며 ‘전주백도’와 ‘전주배’가 유명하다. 백구면에는 포도 · 복숭아 과수원이, 용지면에는 배 과수원이 집중되어 있다. 용지면 · 백산면에서는 인삼경작도 활발하다. 금산면에서는 양잠이 활발하다.

동부 산악지대에 속하는 금산면 · 금구면과 봉남면 · 황산면 · 용지면 · 백산면에서는 한우 · 젖소 등의 축산업이 활발하며, 특히 용지면에서는 양돈이 많이 이루어진다.

서해안의 진봉면 · 광활면 · 죽산면에서는 연근해어업과 수산양식 등이 이루어지나 대부분 겸업이며 영세하다. 만경읍 · 광활면 · 성덕면에서는 소규모 제염업이 이루어진다.

모악산은 함금석영맥이 많아 산금(山金) 광산이 있었으나 현재는 폐광되었으며, 예로부터 모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원평천과 두월천의 충적층에서 사금이 많이 채굴되었다. 오늘날에도 생산량은 미미하지만 사금이 채굴되고 있다.

공업발전은 미미해 양송이가공 · 견직 등 식품 · 섬유업체가 약간 발달했었으나, 최근 전라북도의 공업발전과 함께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인접한 전주시와 군산시에 자동차공업이 발전하면서 부품업체들이 많이 입주해 화학 · 금속 · 기계 · 장비 등의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 서흥 · 봉황 · 월촌 · 황산 · 만경 등 5개 농공단지와 순동지방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시장 분포 현황을 보면 상설시장으로 요촌동에 김제시장, 정기시장으로 금산면에 원평장이 개설되어 2개에 불과하다. 이는 전라북도의 중심 도시인 전주시 · 익산시 · 군산시와 인접해 있어 금구면 · 용지면은 전주시, 백구면 · 공덕면은 익산시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 각 지역의 상권이 인접 시에 흡수되었기 때문으로, 생활권도 각각 분리되어 있다.

김제시장에서는 수산물 · 의류 · 청과물 · 식료품 · 생활필수품 · 농산물 등이 거래되며, 인접한 정읍시와 부안군의 일부지역까지도 이 시장의 상권에 속한다. 김제시장에서는 2·7일에 정기시장도 개설되어 농산물 · 생활필수품 등이 거래된다. 원평장은 금산면 원평리에 4·9일에 개시되고 마늘 · 고추 · 채소류 · 농기구 · 가축 등이 거래된다. 또 교동 등 2곳에 청과물시장이 개설되어 있다.

도로는 전주시 · 군산시 · 익산시 · 정읍시 · 부안군과 연결되는 국도가 시가지에서 교차하고, 시의 남동부에는 호남고속도로 김제인터체인지와 금산사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전주시 · 익산시와는 시 중심부간의 거리가 20여 분에 불과해 중심기능을 많이 빼앗기고 있다. 호남선 철도가 시의 중앙을 통과하며 서해안고속도로도 통과하고 있다.

관광

동쪽으로 민족의 영산으로 추앙되는 모악산(母岳山)이 있고, 그 옆 해안으로 넓게 전개된 김만경평야가 동진강과 만경강 유역에 형성되어 있어 전국 최대의 미곡생산지를 이루며, 산자수려한 경관을 가지고 있는 지방이다. 즉 수려한 산지와 드넓은 평야를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는 좋은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모악산의 금산사를 중심으로 모악산도립공원에 있는 크고 작은 사찰과, 종교중심지로서 보유한 많은 국가유산을 관광할 수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수리시설인 벽골제와 김제시의 수리민속유물전시관이 있어 조상들이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다.

또 광활간척지를 관광하고 심포항(深浦港)에 들러 신선한 생선회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망해사와 그 뒤의 전망대에 올라 만경강 입구 서해바다로 지는 낙조를 감상하는 것이 일품이다.

모악산도립공원 안의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본거지로 경내에는 국보인 금산사 미륵전이 있고, 보물급인 금산사 노주 · 오층석탑 · 혜덕왕사 진응탑비 · 석종 · 석등 · 석연대 · 육각다층석탑 · 당간지주 등의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어, 특히 벗꽃이 피는 봄철과 여름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많이 모인다.

등산로를 따라 산 정상에 오르면 김만경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모악산 자락의 백운동과 인근에는 증산교의 본산이 있어 미륵신앙의 또 다른 형태를 볼 수 있다. 모악산은 1971년에 도립공원이 되었고 1980년에는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어 사하촌에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 음식점, 선물가게, 주차장 등 편의시설이 집결되어 있다.

전주 · 김제 · 정읍 등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귀신사의 부도 · 석수 · 삼층석탑 등 불교관계 국가유산이 많으며, 시에는 김제동헌과 김제내아가 보존되어 있다. 벽골제 제방과 수문이었던 장생거(長生渠)가 남아 오랜 미작농업의 기원지임을 말해 준다.

동진강 하구에는 광활간척지가 개간되어, 인공으로 해안간척지를 개간해 광활한 농경지를 조성한 것을 볼 수 있고, 그 공간 안의 취락들은 일자형의 열촌형태를 이루어 독특한 경관을 보여 준다. 인근의 미면간척지 · 계화간척지와 더불어 인공에 의한 농경지 개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시에서는 이러한 관광자원을 이용한 지평선축제 · 벚꽃축제 · 포도축제와 같은 다양한 관광축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읍 · 면
  1. 만경읍(萬頃邑)

시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23.94㎢, 인구 3,11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만경리이다. 본래 만경군 지역으로 만경읍내가 되므로 군내면이라 해 소죽(小竹) · 내죽(內竹) · 소동(小東) · 농촌(農村)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의 화포 · 장흥 · 창자 · 대토 등 19개 리와 북일도면의 일부, 남일면과 김제군의 마천면의 일부, 연사면의 일부가 통합되어 만경면이 되었다가 1995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김만경평야의 일부로 거의 평야지대이고 구릉성의 야산지대가 약간 있다. 장증산(長證山) · 와석산(臥石山) 등 구릉성 산지가 있는 정도이다. 대부분은 만경강유역의 충적평야지대로 벼농사지대이다. 만경읍 주변에 대규모 배합사료공장이 입지해 가동하고 있으며, 구릉지에 축산업과 과수재배가 개발되어 가고 있다. 능제에서 관개용수의 대부분이 공급된다.

교통은 김제 · 군산 · 광활 · 익산 등과 통하는 도로망이 발달해 편리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과 김제를 연결하는 미곡반출 포장도로가 가장 먼저 개설된 곳이다. 문화유적은 대동리에 이효자문, 만경리에 곽택효자문 · 객사 · 만경향교 등이 있다. 만경(萬頃) · 장산(長山) · 대동(大東) · 송상(松上) · 소토(小土) · 화포(火浦) · 몽산(夢山) 등 7개 리가 있다.

  1. 공덕면(孔德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20㎢, 인구 2,9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마현리이다. 본래 만경군 지역으로 만경읍내 동쪽이 되므로 동일도면이라 해 반곡(盤谷) · 마현(馬峴) · 남당(南塘) · 내동(內東)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이도면(東二道面)의 회룡 · 덕산 · 하방 · 등룡 등 19개 리와 북이도면(北二道面)의 지성 · 저산 · 지수 등 8개 리, 북일도면의 일부와 목연면(木淵面)의 일부와 백석면이 병합되어 공덕면이 되었다.

만경강변을 따라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남쪽은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다. 공덕면 일대는 만경강의 충적작용과 해수의 감조현상으로 넓은 간석지가 발달해 대부분 황무지상태에 있었으나, 만경강제방공사 이후 개간되어 미작농업지대로 전환되었다. 이 개간 평야에는 현재도 하천의 범람을 제어하기 위한 팔련제수문(八連堤水門) 등 많은 수문이 있고, 수문촌이라는 마을 이름을 가진 촌락도 있다.

면 남부의 구릉성 산지 사면은 전작과 양잠, 과수원, 채소재배지 등으로 이용된다. 전 군간 도로와 익산시로 통하는 도로가 발달해 근교농업으로 고등채소재배가 활발하다. 문화유적은 마현리에 김해김씨 효열각, 황산리에 백룡정(白龍亭) 등이 있다. 마현(馬峴) · 황산(黃山) · 공덕(孔德) · 동계(東溪) · 저산(楮山) · 제말(梯末) · 회룡(回龍) 등 7개 리가 있다.

  1. 광활면(廣活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2.13㎢, 인구 1,5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포리이다.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1949년 진북면의 남쪽을 갈라 광활면이 되었다.

전 지역이 간척지로, 1923년에 일본인이 간척사업을 추진할 때 남부의 동진강 쪽 해안에 거전에서 학당에 이르는 14km의 방조제를 축조, 그 안쪽을 개간해 얻은 땅이다. 간척 전에는 해발고도 2∼3m 정도의 간석지였던 곳이 미작지대로 변모한 것이다.

간척사업에 의한 개간으로 임의로 토지를 측량하고 토지구획을 단행해, 정규형의 직사각형 농경지와 수로와 농로를 따른 열촌형 취락들이 중앙입지함에 따라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인다. 전래의 농촌과는 입지, 형태에서 큰 차이가 나는 이색적이고 이국적인 경관이 조성되었다.

동진강도수로에 의해 공급된 운암호의 물이 관개용수로 이 해안간척지에 공급된다. 옥포리는 당시에는 농장관리기구들이 집결해 있던 농장센터였다. 이곳은 주로 일본인들이 거주해 가옥을 지을 때 터돋움을 했으나 다른 열촌취락들은 그대로 초기에는 일자이간형(一字二間型)의 가옥을 같은 대지, 같은 건평, 같은 형태로 조성한 것이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왔다.

미작농업 위주이나 최근에는 온실재배를 통한 딸기 · 유채 재배 등 수익작물 재배도 늘어나고 있다. 교통은 죽산에서 진봉반도를 일주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김제 · 만경 등지와 연결된다. 본래 이 도로는 농장을 관통하던 통로였다. 옥포(玉浦) · 은파(銀波) · 창제(蒼堤) 등 3개 리가 있다.

  1. 금구면(金溝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46㎢, 인구 5,17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구리이다. 본래 금구군 지역으로 동도면이라 해 용지(龍池) · 성길(城吉) · 장교(長校) · 상학(上鶴) 등 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면의 대장 · 오양 · 동화 등 7개 리와 서도면(西道面)의 상하 · 양명 등 6개 리, 일북면(一北面), 이북면(二北面) 일부와 낙양면의 일부, 전주군 우림면(雨林面) 일부가 병합되어 금구면이 되었다.

동북쪽은 모악산 줄기의 산지이고, 서남쪽은 구릉지와 평야지대로 되어 있다. 논농사와 밭농사가 모두 활발하고, 근래에는 과수원 개발, 고등채소재배 등 근교농업적 성격을 지닌 토지이용이 늘어가고 있다. 금구광산은 일제강점기에 개발되었고 부근의 신평천(新坪川)은 사금산지로 유명했으나 쇠퇴하고 있다.

교통은 전주∼정읍간 국도와 호남고속도로 김제 · 금산사인터체인지가 설치되어 매우 편리하다. 전주와 인접해 생활권과 통근권이 전주에 의존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금구리에 금구향교 등이 있다. 금구(金溝) · 상신(上新) · 용복(用福) · 선암(仙巖) · 월전(月田) · 오봉(五鳳) · 대화(大化) · 산동(山東) · 낙성(洛城) · 청운(靑雲) · 용지(龍池) · 옥성(玉成) · 하신(下新) 등 13개 리가 있다.

  1. 금산면(金山面)

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66.79㎢, 인구 5,20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쌍룡리이다. 본래 금구군 지역으로 수류면이라 해 금성(金城) · 용평(龍坪) · 용정(龍亭) 등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면의 일부, 초저면의 일부와 태인군 감산면의 일부를 병합해 1935년 금산사의 이름을 따서 금산면으로 개칭되었다.

시의 가장 험준한 산지가 되며, 모악산 · 상두산 등의 산지로 산지지형이 우세하다. 산간지방의 전작농업으로 담배 · 양잠 · 고추 등의 특용작물을 생산하며, 배 · 사과 · 감 · 밤 등의 과실도 재배한다. 벼농사는 주로 금평저수지 부근에서 이루어진다. 교통은 전주와 통하는 도로와 신태인으로 통하는 도로 등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금산리에 금산사 · 금산사대장전 · 금산사노주 · 금산사석련대 등과 삼봉리에 육송사, 용산리에 구성사, 청도리에 귀신사 등이 있다.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유배되었던 곳으로 많은 국보와 보물급 국가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쌍룡(雙龍) · 원평(院坪) · 용호(龍湖) · 선동(仙洞) · 금성(錦城) · 화율(禾栗) · 장흥(長興) · 금산(金山) · 청도(淸道) · 삼봉(三鳳) · 용산(龍山) · 성계(星溪) · 구월(九月) 등 13개 리가 있다.

  1. 백구면(白鷗面)

시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1.93㎢, 인구 4,3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반월리이다.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공동면이라 해 마전(麻田) · 난산(卵山) · 반월(半月) · 신모(新毛)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회포면(回浦面)의 상도 · 상신 등 7개 리, 목연면의 봉산 · 화죽 등 16개 리, 모촌면(母村面)과 익산군 춘포면(春浦面), 전주군 이북면(伊北面), 만경군 북이도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백구정의 이름을 따서 백구면이 되었다.

남쪽의 구릉성 산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만경강유역의 충적평야로 되어 있다. 평야지대는 벼농사 위주이고 구릉지대는 전작과 양잠, 과수원 등으로 이용된다. 쌀 · 쌀보리 생산이 주종을 이룬다. 근래에는 전주와 익산의 시장을 겨냥한 근교농업으로 채소재배와 원예작물재배, 그리고 양계 · 양돈 · 목우 등의 축산업도 발달하고 있다.

마산리일대의 만경강 연안 충적지대는 직사각형으로 질서정연하게 정비된 농경지, 여기에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수로망이 잘 발달해 있다. 만경강에는 백구제수언이 설치되어 만경강의 물을 조절하고, 반월리는 화강암 석재의 채석장이 번성하고 있다. 취락의 대부분은 만경강의 범람에 대비해 대부분 구릉지에 입지해 있어, 하천변의 독특한 취락경관을 나타낸다.

교통은 4차선 전 군간 도로가 발달해 편리하고 익산시의 생활권에 속한다. 문화유적은 월봉리에 부용사(芙蓉寺), 학동리에 나주나씨 열녀문이 있다. 반월(半月) · 월봉(月鳳) · 부용(芙蓉) · 유강(柳江) · 삼정(三亭) · 백구(白鷗) · 석담(石潭) · 학동(鶴洞) · 마산(麻山) · 영상(嶺上) 등 10개 리가 있다.

  1. 백산면(白山面)

시의 중앙에 위치한 면. 면적 29.34㎢, 인구 2,8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하정리이다.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흰 돌이 있으므로 백석면이라 해 금동(金洞) · 삼수(三水) · 석정(石井) 등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제군의 연산면 · 모촌면 · 입촌면 · 대촌면 · 마천면의 일부와 만경군의 동이도면 · 남일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백석과 연산의 이름을 따서 백산면이 되었다.

승반산(升盤山)을 비롯해 대체로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어 야산개발이 유망한 곳이다. 백산저수지의 물을 관개용수로 사용하는 하서리일대가 벼농사 중심지이고, 구릉지는 과수원과 전작지대로 이용된다. 익산시 · 김제시와 근접해 있어, 주요 농산물로 수박 · 딸기 등 원예작물과 고추 · 참깨 · 땅콩 · 마늘 등의 특용작물을 많이 재배한다. 구릉성 산지가 많은 것을 이용해 도립시범목장이 있다.

면의 중앙에 위치한 백산저수지는 신평천유역 평야의 관개용수 공급원이 되고 있다. 흥사리에는 승가사가 있다. 교통은 익산시와 김제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해 있으며, 시의 생활권에 속해 편리하다. 하정(下亭) · 상정(上井) · 상(上) · 조종(祖宗) · 수록(水祿) · 부거(富巨) · 석교(石橋) · 하서(下西) 등 8개 리가 있다.

  1. 봉남면(鳳南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3.73㎢, 인구 2,56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송리이다. 본래 금구군 지역으로 금구읍내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해 양정(良井) · 만복(萬福) · 구호(九湖)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서면 · 일북면 · 초처면 · 서도면 · 수류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하서면이 되었다가 1935년봉남면으로 개칭되었다.

원평천 · 감곡천 유역의 충적평야와 신응리 · 회성리 부근의 구릉지대로 나누어지고 김만경평야의 곡창지대를 이룬다. 원평천유역은 논농사의 중심지이고 구릉지에서는 전작농업을 한다. 쌀 · 쌀보리가 주요 농산물이나 단일경작에서 오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과수재배, 고추 · 참깨 등 특용작물재배에 힘쓰고 있다.

원평천 하상에서는 사금채취가 활발했으나 현재는 쇠퇴하였다. 교통은 호남고속도로와 전주 · 김제 · 부안간의 도로가 지나 편리하다. 교육 · 문화 · 상업 기능은 김제시와 익산시에 의존한다.

대송(大松) · 평사(平沙) · 화봉(花峰) · 신호(新湖) · 신응(新應) · 종덕(從德) · 행촌(幸村) · 구정(九井) · 회성(回城) · 내광(內光) · 용신(龍新) 등 11개 리가 있다.

  1. 부량면(扶梁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0.10㎢, 인구 1,50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평리이다.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부량면이라 해 부포(復浦) · 전포(前浦) · 신평(新坪)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김제군 홍산면 일부와 태인군 용산면, 사곡면의 일부, 고부군 백산면의 일부가 통합되어 부량면이 되었다.

남동부 신태인읍과의 경계에 위치한 명금산(鳴琴山)지역 구릉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충적평야지대로 김만경평야의 곡창을 이룬다. 운암호(雲巖湖)의 축조와 동진강 하천개수공사 이후 하천유역 개간과 관개용수의 확보로 곡창지대로 발전하였다.

옥정리 · 대평리 · 금강리 등지의 평야지대에는 직사각형의 경지와 수로조직을 잘 갖춘 농지가 전개되고, 그 들판 가운데로 취락들이 중앙입지해 있다. 경지율은 85%이며 그 중 논이 95%를 차지한다.

전주 · 김제 · 정읍을 잇는 도로를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해 김제시의 생활권에 속한다. 문화유적은 신용리에 벽골제의 석조수문과 장생거가 있다. 대평(大坪) · 월승(月昇) · 신두(新頭) · 신용(新用) · 용성(龍成) · 금강(金江) · 옥정(玉亭) 등 7개 리가 있다.

  1. 성덕면(聖德面)

시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2.22㎢, 인구 2,02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석동리이다. 본래 만경군 지역으로 만경읍내 남쪽이 되므로 남일면이라 해 도상(道上) · 석동(石洞) · 도하(道下) · 양지(良池) 등 2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이면과 대촌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성덕산의 이름을 따서 성덕면이 되었다.

신평천유역의 충적평야와 해안 간척평야로 대부분이 평야지대이고, 성덕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구릉지가 발달해 전작지대가 된다. 광활한 충적평야와 편리한 수리시설로 벼농사 중심지가 형성되었고, 구릉지에서는 특용작물재배와 과수원, 원예작물재배가 활발하다.

남포리의 해안에는 성덕염전 · 남포염전 등이 있어 천일제염을 하며, 북쪽에 위치한 능제는 중요한 관개용수 공급원이다. 문화유적은 묘라리에 남산서원 등이 있다. 석동(石洞) · 대목(大木) · 대석(大石) · 사라(砂羅) · 성덕(聖德) · 남포(南浦) 등 6개 리가 있다.

  1. 용지면(龍池面)

시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89㎢, 인구 4,27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암리이다.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개토면이라 해 명당(明堂) · 신평(新坪) · 중평(中坪) · 송정(松亭) 등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모촌면 · 금굴면 · 회포면 · 목연면 · 공동면 일부와 완주군 이서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마을 이름에 용자가 많고 못이 많아 용지면이 되었다.

부용천 유역을 제외하면 면의 대부분이 구릉지대를 이룬다. 구릉지대의 논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관제(觀堤) · 마교제(馬橋堤) · 반지제(反之堤) 등 소규모 저수지가 도처에 발달해 있다. 부용천유역과 구릉지대에서 쌀 · 보리를 생산한다. 전작농업이 활발해 담배 · 채소 · 과수원 · 관상목 등 원예작물 재배도 많이 한다.

교통은 전주시와 익산시로 통하는 교통로가 발달해 편리하다. 근교원예농업지대로 발전하고 있다. 구암(龜巖) · 예촌(禮村) · 송산(松山) · 봉의(鳳儀) · 와룡(臥龍) · 효정(孝亭) · 반교(盤橋) · 용암(龍巖) · 부교(父敎) · 신정(新井) · 용수(龍水) · 장신(長新) 등 12개 리가 있다.

  1. 죽산면(竹山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6.80㎢, 인구 2,89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죽산리이다. 본래 김제군 지역으로 반산면이라 해 신성(新成) · 대옥산(大玉山) · 내재(內才)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포면 · 호산면 · 대촌면 · 월산면 · 부량면의 일부와 고부군 백산면의 일부를 병합해 죽산면이 되었다.

명량산(鳴良山) 부근과 옥성리일대의 구릉지를 제외하면 동진강 하구일대의 넓은 충적평야로 되어 있다. 동진강 하구의 대창리 · 서포리 · 연포리 등지의 대규모 간척지대는 1920∼1930년대 동진강 하천개수공사와 간척공사로 조성되었다.

2004년 현재 경지면적이 2,580㏊로 시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경지율은 약 70.1%이고 그 중 논이 94.8%를 차지하는 곡창지대로서 쌀 · 보리를 주로 생산한다. 최근에는 전주∼부안간 도로변을 따라 양만장이 생기고, 벼의 단일재배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원평천이 면의 중앙을 관류하며, 광활한 농경지에 중앙입지한 취락들이 평야 가운데에 점점이 발달해 있다.

교통은 전주 · 김제 · 부안 · 영광, 김제 · 만경 · 대야 · 군산간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해 매우 편리하며 생활권은 김제시에 의존한다. 대창방호제(大倉防湖堤) · 해창양어장 · 죽산제방이 있고, 동진교와 동진강휴게소는 여행객에게 휴식처를 제공한다.

문화유적은 홍산리에 정문술적선비가 있다. 죽산(竹山) · 홍산(洪山) · 옥성(玉盛) · 종신(宗新) · 대창(大倉) · 서포(西浦) · 연포(蓮浦) · 신흥(新興) 등 8개 리가 있다.

  1. 진봉면(進鳳面)

시의 서부 진봉반도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47.06㎢, 인구 3,07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사리이다. 본래 만경군 지역으로 만경읍내 서쪽이 되므로 상리면이라 해 상철(上蕨) · 신기(新基) · 석교(石橋) · 하수내(下水內) 등 1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하일도면 · 하이도면 · 북면 · 남이면 일부가 병합되어 진봉산의 이름을 따서 진봉면이 되었다.

1949년 반도 남반부의 간척지대를 광활면으로 독립시켰다. 진봉반도의 북단을 따라 50∼70m의 야산지대가 있고, 대부분 지역이 만경강유역의 간척지대로 평야지대이다. 조선 말기까지는 대부분이 간석지로 미개간 황무지였으나 1915년 이완용이 간석지 개간에 착수했고, 1930년경 본격적인 방조제 축조로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벼농사 위주의 미작농업지대인데, 최근에는 온실재배를 통한 딸기 등의 재배도 활발하다. 예전에 군항이었던 심포항을 중심으로 연안어업이 발달하고, 심포항에는 많은 생선횟집들이 집결해 있다. 망해사와 전망대에서는 서해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고, 특히 전망대에서는 만경강 하구와 옥구반도 광활간척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교통은 김제 · 죽산 · 광활 · 진봉 · 만경으로 진봉반도를 일주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편리하다. 고사리의 관기(關基)는 일제강점기에 이 곳에서 생산된 쌀을 도정, 반출하던 항구가 있던 곳이나 현재는 모든 시설이 조락해 버렸다. 고사(古沙) · 정당(淨塘) · 가실(加實) · 상궐(上厥) · 심포(深浦) 등 5개 리가 있다.

  1. 청하면(靑蝦面)

시의 북부 만경강변에 위치한 면. 면적 19.76㎢, 인구 2,04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동지산리이다. 본래 만경군 지역으로 북일도면이라 해 장산(莊山) · 금차(金0xFB28) · 거산(巨山) · 공향(公鄕)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 일부와 김제군 마천면 · 동이도면의 일부가 통합되어 청하산의 이름을 따서 청하면이 되었다.

만경강유역의 동지평야(東之平野)이고, 백산면으로 향하는 청하면의 중앙부는 구릉지대로 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최근에는 구릉지를 이용해 순채 등의 원예작물을 생산하며, 만경강을 중심으로 실뱀장어를 양식하는 곳이 확대되고 있다. 생활권은 김제보다는 군산에 대한 의존도가 더 크다.

만경강을 건너 대야로 가는 만경대교가 있고 구교각에서의 망둥이 낚시가 일품이다. 문화유적은 대청리에 청운사, 동지산리에는 패총의 유적이 있다. 동지산(東之山) · 장산(莊山) · 대청(大靑) · 관상(官上) · 월현(月弦) 등 5개 리가 있다.

  1. 황산면(凰山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8.14㎢, 인구 2,15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봉월리이다. 본래 금구군 지역으로 금구읍내 북쪽이 되므로 이북면이라 해 효원(孝源) · 홍천(鴻천) · 용은(龍隱) · 두월(斗月) · 옥성(玉成) 등 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구군의 일북면 · 남면 · 서도면 · 하서면의 일부가 통합되어 쌍감면이 되었다가 1935년황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대부분 지역이 구릉지이나 두월천유역의 황산리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김제시 쪽으로 발달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생산이 주종을 이룬다. 근래에는 수박 등의 원예작물을 재배하는데, 편리한 교통로를 이용, 김제시뿐만 아니라 전주 · 서울 등지로의 반출이 용이해 기대가 크다.

일제강점기에는 두월천 하상에 금구 산악지대에서 흘러온 사금이 많아 사금채취가 활발했으나 현재는 흔적만 남았다. 예로부터 구릉지를 막아 서목제(西牧堤) · 지수제(支殊堤) · 남성제(南城堤) 등의 제언을 축조, 농업용수를 확보해 사용해 왔다.

교통은 김제와 금구 등지로 통하는 도로가 발달해 편리하다. 봉월(鳳月) · 용마(龍馬) · 홍정(鴻亭) · 쌍감(雙坎) · 남산(南山) · 진흥(眞興) 등 6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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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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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문예지』(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김제지부, 1986)
『내고장 전북의 뿌리』(전라북도청, 1984)
『한국의 발견』(뿌리깊은나무, 1983)
『전라북도정보고』(전라북도청, 1983)
『김제의 전통』(김제군, 1982)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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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전북편(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71)
『전라북도지』(전라북도지편찬위원회, 1969)
전라북도(www.jeonbuk.go.kr)
통계청(nso.go.kr)
김제시(www.gimj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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