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시 ()

대동여지도 / 부안, 정읍
대동여지도 / 부안, 정읍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
정의
전라북도 남서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임실군·완주군, 서쪽은 부안군·고창군, 남쪽은 순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 북쪽은 김제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6°43′∼127°07′, 북위 35°27′∼35°45′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692.78㎢이고, 인구는 11만 597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4개 면, 8개 행정동(27개 법정동), 555개 행정리(141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전라북도 정읍시 수성동에 있다.

자연환경

노령산맥이 통과해 산지를 이루는 군의 동남부를 제외한 그 밖의 대부분 지역은 구릉지와 평야지대이다.

노령산지의 기반암은 편마암·화강편마암·신기화산분출암 등이다. 노령산지의 기반암이 퇴적암류로 이루어진 데 비해 나머지 지역은 화강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구릉지는 화강암의 심층풍화과정에서 형성된 에취평원(etchplain)으로 추정된다.

동남부에는 상두산(象頭山, 575m)·국사봉(國士峰, 543m)·묵방산(墨方山, 538m)·국사봉(國師峰, 655m)·고당산(高堂山, 640m)·칠보산(七寶山, 486m)·내장산(內藏山, 763.5m)·입암산(笠巖山, 626m)·방장산(方丈山, 734m) 등 노령산맥의 비교적 높은 산들이 시의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다.

내장산은 동쪽으로 트인 말굽형으로 하고 있는 월령봉(420m)·서래봉(580m)·불출봉(610m)·망해봉(640m)·연지봉(蓮池峰, 671m)·까치봉(717m)·신선봉(神仙峰, 763.5m)·연자봉(675m)·장군봉(將軍峰, 696m)의 9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장산의 지질은 백악기(白堊紀) 상부층에 속하는 역암·응회암을 관입해 분출한 백악기 말의 산성화산암류로 주요 암석은 안산암(安山岩)이다. 노령산지에 연이어 해발고도 100m 미만의 구릉지가 동남부에 널리 분포하며 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두승산(斗升山, 444m)·동소산(東所山, 225m)·천태산(天台山, 195m)·천애산(天涯山, 198m)·성황산 등의 구릉성 산지가 곳곳에 분포한다.

산지와 구릉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대부분 해발고도 50m 미만의 넓은 평야로 김제평야의 일부를 이룬다. 충적평야는 해발고도 10∼30m 정도의 낮은 지대로 동진강과 고부천 유역에 발달해 있다. 이 충적평야는 빙기에 해수준이 낮아져 깊게 파인 침식곡을 후빙기에 하천이 퇴적한 매적곡에 해당해 하천의 크기에 비해 그 면적이 넓다.

동진강은 산외면의 흑방산에서 발원해, 옹동면의 상두산에서 발원한 용호천(龍虎川)과 내장산에서 발원한 정읍천을 신태인읍에서 합류한 뒤, 김제시와 부안군의 경계를 이루면서 황해로 흘러든다. 그리고 고부천은 고창군에서 발원해 시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북진해 황해로 흘러든다. 넓은 충적평야는 일찍부터 경지로 개간되고 관개수리시설이 갖추어졌다.

남부서안형 기후구에 속해 대체로 온난한 편으로 연평균기온 13℃, 1월 평균기온 -1.5℃, 8월 평균기온 26℃ 내외이며, 연강수량은 1,200㎜ 내외이다.

역사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나, 신석기시대의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이웃지방인 부안·익산 등지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이 곳에서도 신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민무늬토기유적과 지석묘가 고창·부안지방에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그것이 동진강·만경강을 거쳐 내륙지방으로 확산된 사실로 보아, 이 지방에서도 이미 청동기시대에 초기농경문화가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54국 중 정로국(挺盧國)·구소국(狗素國)·불미국(不彌國)·고리비국(古離卑國)·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이 이 지방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대시산군(大尸山郡: 태인현)·정촌현(井村縣: 뒤의 정읍현)·고사부리군(古沙夫里郡: 고부군)이 있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대시산군을 대산군(大山郡)으로 개명했는데, 정읍(井邑)·빈성(斌城)·야서(野西) 등 3개 현을 영현으로 거느렸다. 특히, 정읍지역은 백제시대 5방성(五方城)의 하나인 중방(中方) 고사성(古沙城)이 있었던 정치·군사의 중심지였으며, 지금도 여러 곳에 성터가 남아 있다.

백제의 고사부리군이었던 고부군은 936년(태조 19) 영주(瀛州)라고 칭하고 관찰사가 파견되었으며, 951년(광종 2)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개칭했다가, 다시 1019년(현종 10) 고부군으로 복구되었다. 고부군은 속군인 대산군을 비롯해 보안(保安)·부령(扶寧)·정읍(井邑)·인의(仁義)·상질(尙質)·고창(高敞) 등 6개의 속현을 거느렸다.

정읍현은 고려 초기에는 고부군의 속현이었으며,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1235년(고종 22) 3차침입 때 몽고군이 전라도지방까지 침입해 온갖 약탈을 자행하자, 부령별초(扶寧別抄)였던 전공렬(全公烈) 등이 의병을 모집해 맞서 싸웠다.

또한 고려말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왜구가 침입해 많은 재물을 약탈해 가기도 하였다. 이 지방은 전공주도(全公州道) 관할역으로서, 과원(瓜原)·거산(居山)·천원(川原) 등의 역참이 있었다.

1421년(세종 3) 태인현감이었던 안기(安起)가 태인향교를 신축하였다. 1589년(선조 22) 현이 되었으며, 초대현감으로 이순신(李舜臣)이 파견되었다. 정유재란 때 유춘필(柳春苾)·이허량(李許樑)·유경인(柳景仁)·유희진(柳希津) 등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전사하기도 하였다.

1689(숙종 15)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이 유배지 제주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가던 중 이 지방에 이르러 사약을 받았다. 1728년(영조 4)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이 이인좌(李麟佐)와 공모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다. 특히, 조선시대 정읍지방은 선비의 고을로 알려졌으며, 많은 서원과 사우가 지어졌다.

1894년(고종 31) 고부군수 조병갑(趙秉甲)의 압정으로 발생한 고부 농민봉기는 전봉준(全琫準)과 손화중(孫華仲)을 중심으로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든 동학혁명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일본군의 간섭으로 공주싸움에서 패배함으로써 실패로 끝났다.

1897년 정읍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914년 군면폐합에 따라 고부군과 태인군 일원을 병합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14일 태인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전개했으며, 그 뒤 전지역으로 확산되어 5월까지 모두 13차례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1930년 정읍면이 정주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31년 정주면이 정주읍으로 승격하였다. 1940년에는 신태인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근대의 인물로는 항일의병이었던 임병찬(林炳瓚)·유병우(柳秉禹), 항일독립투사인 백정기(白貞基) 등이 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인해 각급 관청과 교회·주택 등이 잿더미로 변하였다. 1976년 4월 20일 정주읍에 동부·서부·남부 출장소를 설치했으며, 1981년 7월 1일 정주읍이 시로 승격, 정읍군에서 분리되어 정읍군과 별도의 행정구역을 이루게 되었다.

1983년 2월 15일정읍군 내장면 일원과 소성면·덕천면·북면 일부가 정주시로 편입되었으며,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조정이 있었고, 1989년 1월 1일에도 정읍군 입암면 신정리가 정주시에, 정우면 마정리가 북면에 편입되는 행정구역 조정이 있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정주시와 정읍군이 새로운 정읍시가 되었다.

정읍시 발족 당시 행정구역은 1개 읍, 14개 면, 12개 행정동으로 되어 있었으나, 그 후 1996년 6월 1일, 1997년 2월 6일, 1997년 7월 10일, 1998년 8월 1일, 1998년 10월 31일의 행정구역 조정을 거쳐 현재의 1개 읍, 14개 면, 8개 행정동을 이루게 되었다.

유물·유적

선사시대의 유적으로는 북면의 승부리·장학리·화해리에 입석이 있다.

고분군으로는 영원면의 은선리와 도계리 고분군(사적, 2018년 지정)·지사리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운학리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 고부면의 장문리고분군·남복리고분군, 이평면의 두지리고분군이 있다.

산성으로는 삼한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는 초산성(楚山城), 백제 온조왕 때 쌓았다는 고부면 입석리의 두승산성, 덕천면의 우덕리산성(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 입암면 등천리의 입암산성(笠巖山城), 영원면의 은선리토성(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옹동면의 산성토성, 태인면의 백산성(栢山城), 칠보면의 무성리산성, 산외면의 평사리산성 등이 있으며, 성지로는 고부면 고부리의 고사부리성(사적, 2008년 지정), 영원면 은선리의 금사동토성(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농소동의 천곡사지칠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내장동의 내장사조선동종(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장명동의 당간지주, 망제동석불입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영원면의 정읍은선리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후지리탑동석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고부면의 남복리오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용흥리해정사지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용흥리석불입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장문리오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1년 지정)·남복리미륵암석불(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소성면의 정읍보화리석조이불입상(보물, 1987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사지로는 내장동의 영은사지(전라북도 기념물, 1979년 지정)·내장사지(전라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현존사찰로는 내장사를 비롯해 정재암(淨齋庵)·영은암(靈隱庵)·월조암(月照庵)·광덕사·대원사(大圓寺)·보림사·두승사(豆升寺)·용화사(龍華寺)·정토사(淨土寺)·석탄사(石灘寺)·옥천사(玉泉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장명동의 정읍향교와 정읍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상평동의 고암서원묘정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고부면 고부리의 고부향교와 고부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그리고 태인면 태성리의 태인향교와 태인향교대성전(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태인향교만화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와 태서리의 서현사지(전라북도 기념물, 1981년 지정) 등이 있다.

서원으로는 칠보면 무성리의 무성서원(사적, 1968년 지정)과 시산리의 용계서원(龍溪書院)을 비롯해, 북면 보림리의 남고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덕천면 상학리의 동죽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이평면 창동리의 창동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과 도계리의 도계서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사우로는 흑암동의 정충사지(전라북도 기념물, 1985년 지정)를 비롯해, 과교동의 유애사(전라북도 기념물, 1974년 지정), 수성동의 충렬사(忠烈祠)가 있으며, 연지동에는 이화 개국공신녹권(국보, 1986년 지정)이 보관되어 있다.

그 밖에 관아로는 태인면 태성리의 태인동헌(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이 있다.

누정으로는 태인면 태창리의 피향정(보물, 1963년 지정), 태흥리의 읍원정(?遠亭)을 비롯해 고부면 고부리의 군자정(君子亭), 산외면 평사리의 금사정(錦沙亭) 등이 있다.

녹권으로는 칠보면 시산리에 김회련개국원종공신녹권(보물, 1966년 지정)·김회련고신왕지(보물, 1966년 지정), 소성면 화룡리에 장관 개국원종공신녹권(보물, 1981년 지정) 등이 있다.

도지정무형문화재로 판소리(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84년 지정)·악기장(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5년 지정)·정읍농악(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6년 지정)·향토술담그기(죽력고. 전라북도무형문화재, 1987년 지정)·시조창(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996년 지정)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내장산의 굴거리나무군락(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과 백양사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이 있으며, 노거수로는 상평동에 있는 수령 800년의 느티나무를 비롯해, 옹동면 매정리, 소성면 보화리 등지의 수령 500년 내외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보(洑)와 제(堤)로는 1892년 고부군수 조병갑이 쌓았으며 이로 인해 갑오동학혁명의 한 발단이 되었던 이평면 하송리의 만석보지(전라북도 기념물, 1976년 지정), 고부면 관청리의 눌제(訥堤) 등이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는 1894년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격파한 덕천면 하학리의 황토현전적(사적, 1981년 지정), 갑오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이 살았던 이평면 장내리의 정읍 전봉준 유적(사적, 1981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한말 도내 유림 54명이 모여 항일창의(抗日倡義)를 맹세한 내장동의 영보단유지(永報壇遺址: 誓報壇), 수성동의 송우암수명유허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산외면 오공리의 정읍김명관가옥(국가민속문화재, 1971년 지정) 등이 있다. 그 밖에 태인면 태성리에 태인신잠선생영상(전라북도 민속문화재, 1973년 지정), 칠보면 백암리에 남근석(전라북도 민속문화재, 1977년 지정)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태조 7) 창건된 정읍향교가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다. 정읍향교는 1638년(인조 16) 지금의 장명동으로 이건되었으며, 1776년(영조 52) 중건되었다. 또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97년(선조 30)고부면 고부리로 이건한 고부향교와 1421년(세종 3)태인면 태성리에 창건된 태인향교가 있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교의 교육기능이 약화되고 많은 서원이 세워졌는데, 1577년북면 보림리에 이항(李恒)·김천일(金千鎰)을 배향한 남고서원, 1673년(현종 14)덕천면 도계리에 이희맹(李希孟)·김제민(金霽民)·최안(崔安)·김지수(金地粹) 등을 배향한 도계서원이 설립되었다.

또한, 칠보면 무성리의 무성서원은 서원철폐시에도 도내 유일의 불철폐서원이었으며, 시산리에는 고현동각(古縣洞閣)이라는 향학당(鄕學堂)이 있었다. 1695년(숙종 21)에는 송시열·권상하(權尙夏) 등을 배향한 고암서원이 상평동에 세워졌다. 그 밖에 유애사·정충사·출렬사·남천사·모현재·서현사·용계사 등의 사우가 있어서, 철폐되기 이전까지 유생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6년 사립 광화학교(匡和學校)가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1908년에 설립된 사립 초남학교(楚南學校)는 1912년 정읍공립보통학교로 발전하였다. 1908년 고부보통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11년 태인초등학교, 1917년 화호초등학교, 1919년 칠보초등학교 등이 세워졌다.

한편 1910년 설립되었던 군산공립실업학교는 1923년 정읍으로 이건해 정읍공립농업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43년 설립된 정읍공립여학교는 1951년 정읍여자중·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35개교, 중학교 19개교, 고등학교 13개교, 전북과학대학교가 있다.

1964년에 정읍문화원이 설립되어 이 지방의 문화진흥과 향토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1982년에 창립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 정읍지부는 정읍지방 예술인들의 발전과 정읍정신의 앙양을 위한 예술(문학, 국악, 미술, 사진, 무용, 음악)활동을 주관 및 후원하고 있다. 또한 1992년에 설립된 정읍시 시립음악국악원은 국악교육과 국악공연을 통해 국악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에는 널뛰기·윷놀이·연날리기·줄다리기·쥐불놀이·기세배·화전놀이·씨름·강강수월래 등이 있다. 쥐불놀이는 정월의 첫자일[上子日] 밤에 행하는 놀이로, 농부와 아이들이 들에 나가 논과 밭의 두렁을 태우는 것이다.

이날 논·밭두렁의 풀을 태우면 쥐가 없어지고 농사가 잘 된다고 한다. 한편, 부녀자들은 이날 자시(子時)에 방아를 찧으면 쥐가 없어진다 해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방아를 찧는다.

화전놀이는 삼짇날에 하는 놀이인데, 산과 들에 나가 진달래를 뜯어다 쌀가루와 섞어 반죽해 부쳐먹으면서 하루를 즐긴다. 이날 노랑나비를 보면 길조이고, 흰나비를 보면 상을 당하며, 개구리를 보면 배가 부르고, 개미를 보면 부지런해진다고 믿어 왔다.

백중에는 씨름판과 굿판이 성대하게 벌어지고, 추석에는 부녀들이 수십 명씩 모여 서로 손을 잡고 노래부르며 원을 그리는 강강수월래를 즐긴다.

대표적인 동제로는 옹동면 매정리 원내동(元內洞)마을의 당산제를 들 수 있다. 이는 음력 정월 5일에서 6일까지 거행되는데, 신격은 마을 앞에 있는 당산나무와 입석(立石)이다.

제를 지내기 나흘 전부터 마을 입구에는 금줄을 쳐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하며, 그 전에 들어온 손님은 당제가 끝나야만 나갈 수 있다. 마을사람들도 이 기간중에는 어육을 금하고 근신한다. 제수는 각 가정에서 거두어 한 집을 골라 장만하게 하는데, 그 집의 대문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 부정을 막고 제수 장만에 쓰이는 우물도 덮개를 해 사용을 금한다.

5일 밤이 되면 마을사람들은 당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횃불을 밝혀 들고 굿을 하면서, 짚으로 만든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 등에 업고 마을 안에 있는 방죽둑에 나란히 눕혀 놓는다. 이튿날 凸 모양의 각색 기(旗)를 만들어 100m 정도 길이의 노끈에 달아 잡고 농악대를 앞세우고 방죽으로 간다.

이 때 사람뿐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소·말·염소 등의 가축도 끌고 가서 둑에 모셔 두었던 당산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무병하기를 기원한다. 그 뒤 맨 앞에 섰던 두 사람이 두 당산신상을 말에 태우듯이 등에 업고 열을 지어 동구 밖의 당산나무로 가서 제를 지낸다.

제는 주·과·포 등의 제물을 진설하고, 독축을 하며, 마을사람들의 안택과 풍농을 기원하며 소지를 올리는 순으로 진행된다. 당제가 끝나면 기를 불에 태우고 신상을 멀리 내다버린 뒤,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농악과 춤으로 하루를 즐긴다. 이 밖에도 태인의 산신제, 칠보면 백암리의 남근석제 등이 있다.

설화·민요

이 고장의 대표적 설화로는 「최숙빈과 대각교(大脚橋) 전설」·「율지전설(栗池傳說)」 등을 들 수 있다. 대각교는 태인면 거산리에 있었던 다리로 최숙빈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숙종 때 민유중(閔維重)이 영광(靈光)으로 부임하는 도중에 대각교를 지나다가 잠시 쉬게 되었다. 그 때 다리를 지나가는 거지소녀가 있었는데, 의복은 비록 남루하나 그 나이와 용모의 귀여움은 자기의 딸과 비슷하였다.

이에 민공이 소녀를 불러 물어보니 부모를 사별하고 아무 친척도 없는 가련한 처지이므로 소녀를 데려다 딸과 함께 기르며 예절과 글을 가르쳤다. 뒤에 민공의 딸이 숙종의 계비로 간택되어 입궁할 때 그녀를 데리고 갔는데, 그녀가 바로 영조의 어머니인 최숙빈이다.

최숙빈은 장희빈(張禧嬪)의 모함으로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閔氏)가 폐위되었을 때 남모르게 정성을 드리다가 숙종의 총애를 받게 되어 장희빈의 모함을 밝혀 인현왕후를 복위시킴으로써 전날의 은혜에 보답하였다.

고부면 신흥리에 있는 율지는 옛날에 인색한 부자가 살던 집터라 하는데, 어느 날 걸승이 찾아와 그에게 시주를 부탁했으나 박대하고 쫓아내었다. 그 집 며느리는 성품이 착해 이를 보고 몰래 걸승에게 쌀 한 되를 시주하였다. 걸승은 그녀에게 이 곳은 곧 큰 화를 당할 것이니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 하였다.

그녀는 걸승의 신통함을 짐작하고 어린 아들을 업고 따라나섰으나, 그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니 시가는 벌써 큰못이 되어 있었고, 그녀 자신도 석불이 되고 말았다. 지금의 부안군 보안면 상입석리가 바로 그 자리로, 그 뒤 그 석불에게 기도를 하면 소원을 성취한다 해 이를 봉안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이순신(李舜臣)이 왜적과 싸울 때 오색채운이 서려 있었다는 「원통암 석불전설」, 바위 속에서 수백 년 동안 싸우던 용과 말이 바위에 벼락이 떨어지는 통에 달아났다는 「용과 말이 싸운 바위 전설」, 두꺼비가 앉아 있는 방향에 따라 인근마을의 애·경사가 일어난다는 「두꺼비바위 전설」 등이 전해온다.

이 고장에는 「누에노래」·「삼삼는 노래」·「물레노래」·「베틀노래」 등의 길쌈노동요가 전승되고 있고, 또 「나무꾼노래」·「토끼타령」·「딸노래」·「춘유가(春遊歌)」·「양태노래」 등이 불리고 있다.

「누에노래」는 “뽕뽕 큰애기 뽕따러 가세/어디로 갈까 성난방촌으로 가세/뽕이라고 따갖고 집에를 들어오니/열두칸 누에가 낮밥재촉 하는구나/……섬섬옥수 헤쳐주니 옹그래미 집을짓네/청사 닷말이오 황사도 닷말이오/……열닷새 보름새 밀거니 짜거니/이웃집 할머니 그베짜서 뭘할런가/우리어머니 원앙입성하려 하네.”와 같이 뽕을 따서 누에를 치고 고치를 생산해 거기서 실을 짜서 옷을 해 입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물레노래」를 들어보면 “물레야 가람아 배배뱅뱅 돌아라/남의집 귀동자 밤이슬 맞는다/울넘어 담밑에 깔비는 총각아/언제나 다커서 내낭군 될래/물레야 가람아 배배뱅뱅 돌아라……”처럼 부른다.

「토끼타령」은 토끼의 지혜를 반영한 노래로 들어보면 “팔공산 나무초군 가세가세 나무가세……산토끼가 걸렸구나/오늘날은 재수있어 나무말고 이놈먹세/한다리를 들고보니 미꾸녁의 쉬를실어……나무초군 이놈들아/내간을 먹으랴고 하였지만/삼년묵은 똥을뀌고 나는 간다”처럼 나무꾼을 비웃고 도망간다.

「딸노래」를 보면 “딸아딸아 막내딸아 꼽게꼽게 싸게커라/오리나무 도리장농 국화장농 네해주마”와 같이 부른다. 가정으로부터 잠시 해방되어 봄나들이 가는 부녀자들의 들뜬 심정을 노래한 「춘유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구경가세 구경가세 동서간에 구경가세/산봉에를 올라서서 사방산천 살펴보니/이때에는 이삼사월/잎은피어 청산이고 꽃은피어 화산이요/화산청산 건네가서 찔루꽃한쌍 끊어갖고/집으로 돌아와서 임의보선 볼을걸어/임을보고 보선보니 임줄뜻이 전혀없네.”와 같이 부른다.

이 밖에도 「화투노래」·「한글풀이」·「뱃노래」·「나그네노래」·「파랑새요」 등이 전승되고 있다. 특히 「파랑새요」는 이 고장을 대표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산업·교통

동진강과 고부천을 중심으로 평야지대가 넓게 발달해 우리나라의 주요곡창지대를 이루며, 동학농민운동의 한 발단이었던 만석보(萬石洑), 조선시대의 큰 저수지였던 눌제(訥堤)와 입암·원천·주동·만수·석우·용산·수청 저수지 등이 관개용수로 이용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수리시설인 운암저수지(雲岩貯水池)는 섬진강 수계에 속하지만, 칠보면의 칠보발전소(섬진강수력발전소)로 유역 변경되어 시의 관개용수로 이용된다. 내장저수지는 상수원으로 이용되는 등 관개시설이 잘 갖추어져 농업용수가 풍부하다.

농가인구는 총인구의 27.3%, 경지율은 35.1%이며, 경지면적 2만 4,300㏊ 가운데 논이 76.2%로 논농사 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고구마 등 식량작물 외에 고추·무·배추·참깨·사과 등이며, 잎담배재배와 양잠도 활발하다.

고추·무·배추와 잎담배 등은 인접한 고창군과 함께 전라북도의 주요 산지이다. 구릉지가 많은 감곡면·북면·소성면·고부면·정우면 등에서는 밭작물이 많이 재배된다. 감곡면은 무·배추·배추·고추 등의 채소류와 인삼경작이 활발하며, 북면 태곡리 일대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는 그 품질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과수재배도 활발해 북면에서는 사과가 대규모로 재배되며, 산내면과 내장동에서는 감이 많이 생산된다. 최근에는 정우면을 중심으로 배과수원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농가부업으로 양잠은 수출부진으로 많이 줄었으나, 고부면에서는 아직도 많이 하고 있다. 덕천면·북면·태인면에서는 잎담배가 많이 재배된다.

신태인에서는 은행이 많이 생산되며, 동남부 산간지대에서는 약초·산나물채취 등도 이루어진다.

축산업은 활발한 편이며 한육우·젖소·돼지·닭·개 등이 많이 사육된다. 특히 젖소는 정우면의 유가공업체를 중심으로 덕천면과 태인면에서 많이 사육된다.

공업발달은 부진했으나 산업단지조성과 함께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다. 1981년에 영파동에 제1공업단지(현 제1산업단지), 1994년에 하북동에 제2공업단지(현 제2산업단지)와 북면에 제3공업단지(현 제3산업단지)가 각각 조성되어 3개소의 지방산업단지가 운영중이다. 또한 1986년에 조성된 망제동의 농소농공단지, 1987년에 조성된 북면의 북면농공단지, 1991년에 조성된 고부면의 고부농공단지와 신태인읍의 신태인농공단지를 합친 4개소의 단지가 농공단지로 각각 지정되어 운영중이다.

음식료품과 섬유·의복 등의 경공업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국내의 대표적인 안경체 제조업체인 서전, 전자부품생산업체인 대우전자부품, 전해동박을 생산하는 LG금속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고부가 부근의 농산물과 인근의 줄포·염포 등의 나루를 통해 들어오는 수산물을 거래하는 이 지방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호남선철도가 개통되면서 정읍에 그 기능을 빼앗겨 현재는 정기시장도 서지 않는 작은 면 소재지로 변하였다.

시의 동부내륙지방의 중심지였던 태인도 마찬가지로 신태인에 그 기능을 상실하였다. 과거에 정읍시장은 인근의 부안군·순창군·고창군일대를 장악하는 상업의 중심지였으나, 최근 교통의 발달로 전주시 등에 상권을 빼앗겨 위축되었다.

현재 상설시장 2개소, 정기시장 5개소, 가축시장 2개소가 있으며,쇼핑센터도 8개소가 있다. 상설시장으로 시기동일대에 개설된 제1시장에서는 의류·농수산물·철물·생활필수품 등이 거래된다.

시기동에서는 가축시장도 개설된다. 연지동일대에 개설된 제2시장은 농산물·생활필수품 등이 거래된다. 이 두 시장에는 2·7일에 정기시장도 개설되며, 고추의 거래가 유명해 대단위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신태인읍에서는 3·8일에 정기시장과 가축시장이 개설된다. 일제강점기 때 철도를 통한 농산물의 반출과 함께 인근의 부안군에까지 상권이 미쳤으나, 현재는 인근지역으로 상권이 크게 위축되어 있다.

태흥리에서 개설되는 태인장은 시의 동부내륙의 중심시장으로 5·10일에 개설된다. 칠보장은 무성리에서 4·9일에, 산외장은 동곡리에서 1·6일에 개설된다. 연지동과 수성동에서는 각각 청과물시장이 개설된다.

특산물로는 옹동숙지황(甕東熟地黃)·정읍약주·보리수염주(菩提樹念珠) 등이 있다. 옹동면 상산리 일대에서 생산되는 숙지황은 지황(地黃)으로 우수한 약재로 인정받고 있으며, 보리수의 열매인 보리자(菩提子)로 만든 보리수염주는 장명동일대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라북도 남서부지방의 교통 중심지로 호남선철도와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전주·부안·고창·장성·순창 방면의 국도와 지방도의 도로망이 사방으로 뻗어 있다. 관광객이 많은 내장산국립공원은 호남고속선, 호남선철도의 정읍역과 호남고속도로의 정읍인터체인지가 있어 편리하다.

관광

내장산·두승산·입암산 등 산지의 경승지와 동학유적지·사찰·문화재 등의 역사탐방관광지로서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산지의 경승지로 가장 유명한 것은 내장산국립공원이다. 노령산맥이 서남으로 흘러내리다가 끝머리에 한번 크게 솟구친 것이 내장산으로 호남 5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이 산은 수려한 바위봉우리의 기암괴석 속에 서 있는 소나무숲의 운치에다 그 밑으로 온 산을 뒤덮은 낙엽수림, 그리고 그 사이 심산유곡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로 해서 봄철의 진달래, 여름의 싱그러움,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화는 태고의 절경을 간직하고 있다.

최고봉인 장군봉(765m)과 연이은 신선봉(763m)을 중심으로 연지봉·망해봉·불출봉·서래봉 등의 준봉이 병렬하고 있어 좋은 등산코스를 제공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이들 준봉들이 내장사를 둘러싸고 여러 계곡들이 모여든다.

온 산을 뒤덮은 굴참나무·단풍나무·떡갈나무·굴거리나무 등은 가을철이면 온 산을 빨갛게 물들여 전국 제일의 단풍경치를 연출한다. 관광취락에는 호텔· 숙박시설·오락시설·식당 등이 완비되어 있다.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특히 가을 단풍철에는 인산인해를 이룬다. 산을 넘어 백양사에 연결되는데 이 고개마루에서 내장산 계곡의 단풍을 관상하는 것 또한 일품이다. 담양댐·장성댐 등지에도 연결되어 좋은 관광코스를 제공한다. 정읍시에서 내장산으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내장저수지가 있고 내장산 안으로 들어가는 관광도로가 계곡을 끼고 두 줄로 설치되었다.

두승산은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호남의 명산이고 은은한 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유선사와 승고산성지가 있다. 또한, 동학과 관계가 있는 만석보, 이평의 전봉준생가 등과 연계한 역사탐방코스로도 좋다.

군내에는 산외면 쪽과 칠보면 쪽에서 칠보유역변경발전소를 바라보며 산내면으로 진입해 옥정호로 들어가는 옥정호 일주도로의 경관 또한 빼어나다. 옥정호를 돌아서 갈담을 거쳐 회문산을 탐방할 수도 있다. 산외면에는 용두산용굴이라는 석회동이 있다.

시에서는 현재 4대권역별관광, 테마관광, 코스별관광 등 다양한 형태의 관광루트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읍·면
  1. 신태인읍(新泰仁邑)

시의 북부에 위치한 읍. 면적 29.69㎢, 인구 6,42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태인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용산면·북촌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북면(龍北面)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33년 신태인면으로 개칭되고 194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태인면 백산리가, 1987년정우면 산북리 일부와 감곡면 용곽리 일부가 이 읍에 편입되었다. 1995년 도농복합형 도시설치로 정읍시의 관할구역이 되었다.

읍의 동남부에는 낮은 구릉성산지가 발달하고, 서남부는 동진강유역의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미작농업의 중심지를 이룬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서진멀이라 불리는 한촌이었으나, 호남선의 요역으로 미곡반출이 이루어지면서 농산물집산지로 발달해 미곡창고와 도정공장 등이 들어찬 중심지로 발달하였다.

해방 후 미곡집산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뒤 상대적으로 쇠퇴했으나, 지금도 번성기의 자취를 볼 수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고추·양송이 재배 등이고 축산업과 양송이가공업도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도정공업은 쇠퇴하였다. 교통은 호남선철도와 정읍·김제·전주·부안 등지로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해 있다.

신태인(新泰仁)·구석(九石)·연정(蓮汀)·우령(牛嶺)·신룡(新龍)·양괴(陽槐)·육(六)·청천(淸泉)·신덕(新德)·화호(禾湖)·백산(白山) 등 11개 리가 있다.

  1. 감곡면(甘谷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55㎢, 인구 3,09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방교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감산면·은기동면·사곡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감곡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87년 용곽리 일부가 신태인읍으로 편입되었다.

대부분 지역에 구릉성산지가 발달하고 있다. 북부의 원평천유역과 감곡천유역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 중심지를 이루며, 고추·양송이 재배도 행하고 있다. 감곡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볏짚을 이용한 다다미를 생산해 일본에 수출하고 있다. 교통은 호남선 철도가 지나며 신태인읍에서 김제방면의 도로가 분기해 교통은 편리하다.

방교(芳橋)·진흥(眞興)·대신(大新)·통석(通石)·계룡(桂龍)·화봉(花峰)·유정(儒丁)·삼평(三坪)·용곽(龍郭)·승방(勝芳)·오주(五舟) 등 11개 리가 있다.

  1. 고부면(古阜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02㎢, 인구 3,17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고부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남부면·서부면·동부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부면에 통합되었다. 1987년 소성면 만수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다.

동부는 두승산을 비롯한 주변에 구릉성산지가 발달하고, 서부는 동림저수지에서 흐르는 고부천유역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고추·참깨·담배를 생산하고 있다. 특히 만수리 일대의 젖소사육은 군내 1위로 매우 활발하다. 교통은 도로가 정읍·김제·부안방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장문리의 오층석탑, 남복리의 오층석탑·미륵암석불, 용흥리의 해정사지석탑·석불입상, 고부리의 고부구읍성지·군자정, 입석리의 두승산성, 신중리의 동학혁명기념탑 등이 있다.

고부(古阜)·남복(南福)·입석(立石)·덕안(德安)·신중(新中)·만화(萬化)·관청(官淸)·용흥(龍興)·신흥(新興)·강고(江古)·백운(白雲)·장문(長文)·만수(萬壽) 등 13개 리가 있다.

  1. 덕천면(德川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20.67㎢, 인구 2,0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우덕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우덕면·달천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천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망제리가 정읍시로 편입되었고, 1987년 이평면 도계리가 이 면으로 편입되었다.

서남부는 두승산, 남부는 동죽산 등을 비롯한 구릉성산지이고, 동부에 정읍천 연안에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의 생산이 많고 최근에는 젖소사육도 활발하여 군내 1위(2004년 기준)를 차지하였다. 교통은 정읍∼신태인간의 도로가 발달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하학리의 황토현전적지, 우덕리의 산성, 상학리의 동죽서원(東竹書院) 등이 있다. 우덕(優德)·상학(上鶴)·하학(下鶴)·신월(新月)·달천(達川)·도계(道溪) 등 6개 리가 있다.

  1. 북면(北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54㎢, 인구 4,88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한교리이다. 본래 정읍군 지역으로 북일면·북이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면으로 병합되었다.

1935년 보림면의 마정리·보림리와 우순면의 화해리·남산리·영파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하북리·영파리·구룡리가 정주시로 편입되었고, 1987년정우면 장학리 일부가 이 면에 편입되었다.

남부에 칠보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대부분 지역은 구릉성산지를 형성하며, 정읍천과 한교천의 연안에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이외에 붉은 황토에서 고구마 생산이 많은데, 북면고구마로 유명하다. 교통은 호남고속도로가 북서쪽을 지나며, 전주와 정읍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남산리의 모현재, 보림리의 남고서원과 보림사 등이 있다. 한교(漢橋)·보림(寶林)·마정(馬亭)·태곡(台谷)·신평(新平)·복흥(伏興)·승부(承富)·화해(花海)·남산(南山)·장학(長鶴) 등 10개 리가 있다.

  1. 산내면(山內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14㎢, 인구 1,43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능교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산내일변면·산내이변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내면으로 병합되었다. 1973년 목욕리·종산리가 산외면으로 편입되었고, 1987년 종산리 일부가 임실군 강진면으로 편입되었다.

북부는 왕자산(444m)·성옥산(389m), 남부는 오두봉(555m) 등의 험한 산지가 있어 고산지대를 이룬다. 임실군 강진면과의 경계에 옥정호가 있어 칠보면의 칠보유역변경식 발전소에서 발전을 하고, 그 물은 동진강도수로를 지나 정읍·김제·부안군의 몽리지역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산지산록에서 밭농사를 주로 해 잡곡류·무·배추 등의 고랭지채소를 생산한다. 축산업과 담수어업도 하고 있다. 도로는 옥정호 일주도로를 이용해 정읍의 강진·순창·전주·임실 등지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고려 때 도선이 군신봉조(君臣奉朝)의 49대 장상지라고 감탄했던 왕자봉·성옥봉·삼태봉이 있어 풍수지리적으로 유명하다. 능교(菱橋)·종성(宗聖)·장금(長錦)·매죽(梅竹)·예덕(禮德)·두월(斗月) 등 6개 리가 있다.

  1. 산외면(山外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72㎢, 인구 2,36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평사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산외일변면·산외이변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외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산내면 목욕리·종산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다.

노령산맥 서사면으로 섬진강과 동진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중앙부를 흐르는 도원천 연안에 소규모의 평야가 발달하여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콩·고추 등을 재배하고 감·밤·담배도 생산한다.

최근에는 산록에서 축산업도 행하고 있다. 교통은 옥정호 일주도로와 연결되고 구이에서 산외면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개설되어 태인과도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오공리의 하청사와 김동수고가가 있다. 평사(平沙)·화죽(花竹)·상두(象頭)·정량(貞良)·동곡(東谷)·오공(五公)·목욕(沐浴)·종산(宗山) 등 8개 리가 있다.

  1. 소성면(所聲面)

시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06㎢. 인구 2,34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등계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소정면과 성포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성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 공평리·흑암리·용계리가 정주시로, 봉암리가 입암면으로 편입되었으며, 1987년에는 만수리가 고부면으로,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동부에는 국사봉 등 산지가 있으나, 대부분 지역은 구릉성산지와 서부의 평야지대로 구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보리·마늘·고추·참깨·땅콩·포도·담배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정읍·고창·부안 등지와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애당리의 옥산서원, 화룡리의 백제요지 등이 있다. 등계(登桂)·보화(普化)·신천(新川)·기린(麒麟)·화룡(化龍)·고교(古橋)·주천(酒川)·중광(中光)·용정(龍井)·예당(艾堂) 등 10개 리가 있다.

  1. 영원면(永元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24.93㎢, 인구 2,05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은선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북부면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부면의 풍월리·신영리·후지리, 궁동면의 백양리, 덕림면의 가다리 일부가 이 면으로 병합되었다. >1987년이평면 청량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동남부에는 천태산 등의 산지가 있고, 서부에 고부천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콩·고추·수박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부안∼정읍간의 국도가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은선리·운학리 일대의 고분군, 은선리의 토성·삼층석탑, 금사동산성지, 후지리의 탑동석불 등이 있다. 은선(隱仙)·후지(後池)·장재(長才)·앵성(鶯成)·운학(雲鶴)·풍월(豊月)·신영(新永) 등 7개 리가 있다.

  1. 옹동면(甕東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39.88㎢, 인구 1,92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칠석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옹지면·동촌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옹동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동부는 상두산 등의 산지가 있고, 서부는 용호천 연안에 작은 평야가 형성되어 분지를 이룬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콩·고추·담배 등을 생산한다. 특산물로는 상산리일대에서 생산되는 용동숙지황이 유명하다. 교통은 전주∼정읍, 칠보∼신태인간의 도로가 통과하고 호남고속도로와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산성리의 토성과 모충사(慕忠祠), 비봉리의 어사각 등이 있다. 칠석(七石)·비봉(飛鳳)·산성(山城)·매정(梅井)·오성(五成)·용호(龍虎)·상산(象山) 등 7개 리가 있다.

  1. 이평면(梨坪面)

시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72㎢, 인구 2,47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두지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답내면·궁동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평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정우면 오금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고, 1987년 청량리 일부가 영원면으로, 도계리가 덕천면으로 편입되었다.

남서부에는 천태산 등의 산지가 솟아 있고, 대부분 구릉성산지이며, 동부는 동진강과 정읍천 연안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 등의 주곡작물과 과수·담배·담배·수박·참외 등이 생산되고, 목우와 양돈을 하는 축산업도 발달되어 있다. 교통은 신태인·부안·정읍방면의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장내리의 전봉준고택, 하송리의 만석보지 등이 있다. 두지(斗池)·팔선(八仙)·하송(下松)·마항(馬項)·두전(斗田)·장내(長內)·청량(靑良)·창동(滄東)·평령(平嶺)·산매(山梅)·오금(梧琴) 등 11개 리가 있다.

  1. 입암면(笠巖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71㎢, 인구 3,30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천원리이다. 본래 정읍군과 흥덕군 지역으로 정읍군 남이면·서일면, 흥덕군 이동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입암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83년소성면 봉양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고, 1989년 신정리가 정주시로 편입되었다.

남동부는 입암산 등의 험준한 산지가 솟아 고산지대를 이루며, 전라남·북도간의 교통로가 되는 노령(蘆嶺)이 있다. 북동부 정읍천 유역에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고추 등을 생산하며 과수재배도 하고 있다.

1930년대 보천교(普天敎)의 발상지로서 자력갱생을 주장해 섬유·인조견 공업이 발달하고 있다. 교통은 호남선철도가 지나 천원역·노령역이 있다.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고 정읍∼장성으로 가는 국도가 지난다.

문화유적은 동천리의 입암산성, 천원리의 천원역유지가 있고 보천교의 사찰지들이 있다. 천원(川原)·연월(蓮月)·등천(登川)·하부(下富)·신면(新綿)·봉양(鳳陽)·접지(接芝)·마석(磨石)·지선(芝仙)·단곡(丹谷) 등 10개 리가 있다.

  1. 정우면(淨雨面)

시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32㎢, 인구 2,9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초강리이다. 본래 고부군 지역으로 우일면·장순면·벌미면·수금면·오금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정토면과 우순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35년 정토면과 우순면을 병합해 정우면으로 하고, 우순면의 남산리·영파리·화해리는 북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오금리가 이평면으로 되고, 1987년 산북리가 신태인읍으로, 1989년 장학리가 북면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중부에는 정토산(淨土山, 130m)을 비롯해 구릉성산지가 발달하고 있으며, 서부는 정읍천, 북부에는 동진강이 흘러 하천연안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고추·담배 및 사과를 중심으로 하는 과수재배가 성하다.

한편,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중소기업들의 공장들이 가동하고 있다. 교통은 호남선철도의 초강역이 있고,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며, 정읍·칠보·전주, 정읍·태인·전주간의 도로가 발달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우일리의 송덕원이 있다. 초강(楚江)·수금(水金)·산북(山北)·대사(大寺)·회룡(回龍)·화천(花川)·장순(長順)·우산(牛山)·우일(雨日)·대산(垈山) 등 10개 리가 있다.

  1. 칠보면(七寶面)

시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60㎢, 인구 2,6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시산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고현내면·남촌일변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칠보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남동부는 고당산 등의 높은 산지가 있고,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구성되어 있다. 북부 동진강 연안에 작은 충적평야가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고추·마늘 등이 생산되고, 과수재배와 양봉도 하고 있다.

1945년에 건설된 칠보발전소는 옥정호의 물을 유역변경해 발전하고, 그 물을 정읍·김제·부안군의 계화간척지까지 관개용수로 공급한다. 교통은 정읍·정우·칠보·전주, 태인·호반일주도로·전주로 연결되는 도로가 발달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시산리의 고현동각·용계사·남천사, 무성리의 무성서원·송산사·필양사·송정영당 등이 있다. 시산(詩山)·축현(丑峴)·백암(白巖)·무성(武城)·와우(臥牛)·반곡(盤谷)·수청(水靑) 등 7개 리가 있다.

  1. 태인면(泰仁面)

시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20㎢, 인구 4,15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태창리이다. 본래 태인군 지역으로 군내면·인곡면·흥천면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태인면으로 병합되어 이 군에 편입되었다. 1935년 보림면의 태서리·매계리·오류리·태남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고, 1983년 백산리가 신태인읍으로 편입되었다.

동북부에는 구릉성산지가 발달하고, 서남부는 동진강 유역에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보리·담배 등이 생산된다. 교통은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며 전주·태인·신태인·부안, 전주·태인·정읍, 태인∼칠보간의 도로가 발달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태창리의 피향정, 태성리의 태인향교·신잠선생영정, 태서리의 서현사 등이 있다. 태성(泰成)·태흥(泰興)·박산(朴山)·궁사(弓四)·낙양(洛陽)·오봉(五峰)·고천(高川)·증산(甑山)·태창(泰昌)·거산(居山)·태서(泰西)·매계(梅溪)·오류(五柳)·태남(泰南) 등 14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지방행정구역연감』(한국도시행정연구소, 2003)
『한국지방자치백서』(한국언론인협회, 2002)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내고장 전북의 뿌리』(전라북도, 1984)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전라북도지』(전라북도지편찬위원회, 1969)
전라북도(www.jeonbuk.go.kr)
통계청(nso.go.kr)
정읍시(www.jeongeu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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