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경건(敬建).
36세 때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7(인조 5) 정묘호란 당시 전 현감 정봉수(鄭鳳壽) 및 그 아우 정기수(鄭麒壽)를 도와, 평안도 용골성(龍骨城)을 점거하고 후금 군대에 항복한 장사준(張士俊)을 죽였다.
또한, 이광립(李光立) 등과 의병을 일으켜 용골성을 지켰다. 그 공으로 1627년 평안도의 미곶첨사(彌串僉使)에 임명되었고, 1707년(숙종 33)에는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정려문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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