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도 고대로부터 기생충이 있었겠지만 그에 관한 기술은 중국에서 도입된 자료가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허준(許浚)이 지은 ≪동의보감 東醫寶鑑≫(1610년)도 대부분 중국으로부터의 각종 의서 내용들을 인용하는 데 그쳤다.
예를 들면 “사람이 고단할 때 열이 나고 열이 있으면 충(虫)이 생기는데 심충(心虫)을 회충이라 하고, 비충(脾虫)을 촌백충(寸白蟲), 폐충(肺蟲)은 누에와 같으니 모두 사람을 죽이는 병으로서 그 중 폐충이 가장 급한 병이다.”라는 ≪천금방 千金方≫ 기사를 인용하였다. 또 “사람 몸에는 상충(上虫) · 중충(中虫) · 하충(下虫)이 있어 이들은 사람이 옳은 짓 하는 것을 미워하고 나쁜 짓 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중황경 中黃經≫에서 인용한 구절도 있다.
기생충 병의 역사적 기록 중 세종의 어머니가 학질에 걸려 1420년(세종 2) 10월에 사망하였다는 기사가 있고, 1526년(중종 21) 영남일대에 학질이 크게 유행하였다는 기사들이 있기는 하지만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테두리에서의 기생충병 및 기생충에 관한 기사는 20세기에 들어 밀즈(Mills, H.G.)의 보고(1911)가 처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선충류(線虫類) · 흡충류(吸虫類) · 조충류(條虫類) · 원충류(原虫類) 등 모두 50여 종이 문헌상 기록되었으나 매년 그 수는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세계보건기구 자료에 의하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약 500종류의 인체감염 예가 보고된 바 있고 국제적인 교류도 더 빈번해지는 추세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기록된 인체 기생충 중 중요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① 연충류(蠕虫類):회충 · 개회충 · 아니사키스 · 요충 · 편충 · 두비니구충 · 아메리카구충 · 분선충 · 동양모양선충 · 말레이사상충 · 동양안충 · 메디나충 · 관동주혈선충 · 간흡충 · 폐흡충 · 간질 · 요코가와흡충 · 극구흡충류(3종) · 무구조충 · 유구조충 · 포충 · 왜소조충 · 축소조충 · 열두조충 등이다.
② 원충류(原虫類):이질아메바 · 대장아메바 · 왜소아메바 · 요도아메바 · 쌍핵아메바 · 치은아메바 · 람불편모충 · 메닐편모충 · 자유생활아메바수종 · 질트리코모나스 · 장트리코모나스 · 대장발란티듐 · 열대열원충 · 삼일열원충 · 사일열원충 · 난형원충 · 도노반리쉬마니아 · 인구충 · 톡소포자충 · 주폐포자충 · 외래성인 리쉬마니아 등이다. 기생충 감염율은 생활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 만연상태를 역학적인 견지에서 요약하여 본다.
① 토양매개성 기생충:우리 나라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이었기 때문에 화학비료 생산이 어려웠던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인분뇨(人糞尿)를 비료로 사용하였으므로 토양의 오염으로 소화기 계통 기생충들이 채소류 또는 음료수를 통하여 감염될 기회가 많았다. 1949년도 보고된 전국적인 조사 자료에 의하면 회충 81.4%, 편충 86.8%, 십이지장충 38.9% 등 높은 감염율이었다.
1960년대부터 공업화에 따른 화학비료로의 대체와 수세식변소 적용에 부응하여 21세기를 지향하는 1998년도 통계자료는 장내 기생충 감염율이 전국적인 규모에서 1% 미만에 이르렀고, 특히 십이지장충(구충류)은 거의 근절상태에 이르렀다.
② 접촉감염성 기생충:질트리코모나는 여성 대하증의 원인 중의 하나로 알려졌으나 그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다. 그러나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외래환자 중 대하증을 호소하는 40%가 질트리코모나스 감염자임이 보고된 바 있다. 요충은 생활양식에 따라 가족 상호간의 접촉도 감염수단으로 될 가능성이 많다. 불결한 환경에서 집단 생활하는 고아원 등에 10% 또는 그 이상인 조사결과가 보고되었다.
③ 패류매개성 기생충:간흡충 · 폐흡충 · 요코가와장흡충 등은 한국에서의 대표적인 기생충으로 알려져 있다. 간흡충은 제1중간숙주인 왜우렁의 분포와 연관된 낙동강 · 영산강 · 만경강 등 큰 강줄기 평야부에 많고, 폐흡충은 제1중간숙주인 다슬기의 분포와 연관된 비교적 맑은 물이 흐르는 산간계곡에, 그리고 요코가와장흡충도 다슬기 · 은어 등 제1 또는 제2중간숙주의 분포와 관련된 섬진강 · 낙동강 유역, 기타 제주도, 동해안 소하천 유역이 만연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959년도에 시행된 전국규모의 항원 피내반응 조사에서 간흡충 감염자 450만, 폐흡충 감염자 100만 내지 150만에 이를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검사방법인 피내반응 자체가 현증을 뜻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신빙성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므로 실제 감염자수는 그 숫자에 크게 못미칠 것이고 1970년대부터의 흡충류 구충제인 프라지칸텔의 국내 생산은 그들 흡충류 관리사업에 보탬이 되었다.
④ 곤충매개성 기생충:학질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는 삼일열 · 사일열 · 난형 및 열대열 말라리아로 분류되나 그 중 한국에서의 토착성인 것은 삼일열 말라리아이며 여타는 외래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9년부터 매개곤충인 학질모기의 살충제 적용, 항말라리아제 보급 등에 힘입어 1980년대에는 거의 근절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1993년대 후반부터 경기도 및 강원도 북부지역에서 삼일열 말라리아 감염자가 1997년 현재 2,198명 보고되었다.
숲 모기의 매개로 감염되는 말레이사상충은 제주도와 한반도 서남지역 도서지방에 분포되었고 내륙의 경상북도 영주, 충청남도 논산,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 등지에서 과거 풍토병으로서 만연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살충제에 의한 모기 박멸사업과 사상충치료제인 디에칠카바마진 적용으로 1998년도 현재 내륙에 있어서는 거의 근절상태에 이르렀다. 제주도 남부해안 특히 만연지역으로 알려졌던 하예마을도 1960년대 혈중 사상충자충 양성자수가 7%이던 것이 1988년에는 0%인 것으로 보고되었다.
⑤ 수인성(水因性) 기생충:이질아메바 · 람불편모충 · 크립토포자충 등은 음료수를 통하여 감염되는 기생성원충으로 그 중 이질아메바는 피곱똥 · 간농양 등의 요인이 되며 씨스트형태로서 음료수를 통하여 감염된다. 람불편모충 · 크립토포자충도 설사 등 소화관 장해를 일으키며 특히 면역결핍 상태인 경우 그 증세가 심해진다.
⑥ 육류매개성 기생충:무구조충은 소, 유구조충은 돼지의 살에서 낭미충(囊尾虫)으로 있다가 이들 고기를 생식할 때 감염된다. 특히 유구조충은 난자가 입으로 들어오면 소화관에서 부화하여 그 유충은 피하, 각종 장기 등에 이르러 낭미충증을 일으킨다. 성충은 소화장애 등을 일으키는데 그치나 낭미충은 뇌신경계에 정착될 경우 간질 · 두통 등을 유발한다.
톡소포자충도 감염동물을 매개하여 대부분 경구적으로 감염되나 임신 중에는 태아 감염되어 선천성 불구아(예:선천성 실맹, 지체이상 등)로 태어난다. 그 밖에 주폐포자충(뉴모씨스트)은 공기 감염되며 비병원성으로 알려졌으나 영양불량 · 면역저하 상태에서 폐렴 등 치명적인 증세를 유발한다.
⑦ 외래성(外來性) 기생충:한국에 없었던 기생충들이 해외여행자를 통하여 국내에 퍼지는 경우로서 말라리아원충(삼일열 제외) · 리쉬마니아원충 · 빌할즈흡충 · 관동주혈선충 등은 그 대표적인 것들이나 생태학적 여건 때문에 토착화기는 어렵다.
⑧ 인수공통(人獸共通) 기생충:가축 또는 야생동물에만 특이적으로 기생하는 것들 중 인체에 감염되면 유충상태로 또는 성충이 되어 기생한다. 상대적으로 인체 기생충이 그들 동물에 기생하는 예도 많다. 유충상태로만 기생하는 것들로 개회충 · 포충 등을 예거할 수 있으며 간흡충 · 폐흡충 등은 성충이 되어 기생한다.
결론적으로 보건사회부 자료에 의하면 기생충 감염율은 차츰 감소되어 가는 추세에 있다. 특히 토양매개성 기생충은 1960년대의 90%를 상회하던 감염율이 1990년대 후반 1% 미만으로 감소되었다. 그러나 어육류를 매개하는 기생충은 식습관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항암제 · 스테로이드계 약물의 남용으로 면역결핍성 상태에 있을 경우 감염되기 쉬운 각종 포자충 감염 등은 국민보건에 새로운 문제점으로 대두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