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성균관대사성, 예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서 좌부승지·예조참판·도승지를 거쳐 의주부윤이 되고 이듬 해 청천군(淸川君)에 봉해졌다. 그 뒤에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대사헌·경기감사·병조참판·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강원감사·성균관대사성·형조판서·이조판서·예조판서 등 많은 요직을 역임하였다.
정조가 즉위한 뒤 홍국영(洪國榮)에게 몰려났다가 홍국영이 실각하자 1782년(정조 6) 청천군의 군호(君號)가 회복되고 이어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한성판윤·판의금부사·형조판서·좌참찬 등을 지냈다. 증조 김간(金榦)의 가학을 이어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저서로는 『운계집(雲溪集)』·『사례집요(四禮輯要)』·『문헌집략(文獻輯略)』·『시차(詩箚)』·『서차(書箚)』·『예차(禮箚)』·『중용기의(中庸記疑)』·『중용집설(中庸集說)』 1권, 『가범(家範)』·『낙민장보(洛閩狀譜)』 등이 있다. 시호는 청헌(淸獻)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운계집(雲溪集)』
- 『운석유고(雲石遺稿)』
- 『정조실록(正祖實錄)』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