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의병을 일으켜 친일관리 및 밀정 처단,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던 중 일제의 무자비한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을 목격하고서 분개하여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김종철은 이전의 의병동지들을 규합해 부대를 조직한 후 친일관리와 밀정 등 부일배를 처단했다. 그리고 투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집했다.
1910년 음력 3월에는 김문도(金文道)와 김중삼(金仲三) 등 부하 의병들과 함께, 인제군 내면(內面) 소한리(小閑里)에 살던 내면 면장 김시원(金時元)이 의병을 밀고하는 등 일본경찰에 협조한 데 분개하여 김시원을 처단하려 했으나, 부재중이어서 김시원의 집을 불태웠다.
같은 해 음력 5월 30일에는 김국서(金國瑞) 등 부하 의병 4명과 함께 인제군 기린면(麒麟面) 서리(西里)에 살던 일진회원 엄윤문(嚴允文)을 총살하여 처단했다. 엄윤문은 김종철의 친족과 옛 부하에게 박해를 가한 바 있다.
1913년 음력 11월에는 이종서(李鍾西) 등을 이끌고 강릉시 연곡면(蓮谷面) 퇴곡리(退谷里) 유동(柳洞)의 정현삼(鄭顯三)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용품을 징발했다. 1915년 5월에는 김종근(金鍾根) · 장명수(張命壽) · 김원실(金元實) · 정대성(鄭大成)과 함께 홍천군 두촌면(斗村面)의 하영도(河影圖) 집에서 군자금을 징수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이들과 함께 강릉시 연곡면 장천리(長川里)에 들어가 자신들을 밀고한 박군팔(朴君八)을 총살했다. 그 후 체포되어 1916년 1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17년 4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6)
-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제1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조선총독부관보」(1917.4.2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