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인제 출신이다. 본명은 김종환(金鍾煥)이다. 이명은 김광옥(金光玉)이다.
1907년 8월 경 인제에서 박화암(朴化巖)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관포수 등 1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1908년 2월 경 일본군 영양수비대 병사들에게 체포되었다. 김종철은 강릉으로 압송되는 도중에 탈출했으며, 이후 가족을 인솔하고 정선·삼척 등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숨어살았다. 1909년 3월 경 경북 봉화에 이주하여 주막을 경영하면서 김종철이라 개명하고 살았다.
그러던 중 일제의 무자비한 이른바 ‘남한대토벌작전’을 목격하고서 분개하여 재차 의병을 일으켰다. 김종철은 이전의 의병동지들을 규합해 부대를 조직한 후 친일관리와 밀정 등 부일배를 처단했다. 그리고 투쟁 역량을 강화하기 위하여 군자금을 모집했다.
1910년 음력 3월에는 김문도(金文道)와 김중삼(金仲三) 등 부하 의병들과 함께, 인제군 내면(內面) 소한리(小閑里)에 살던 내면 면장 김시원(金時元)이 의병을 밀고하는 등 일본경찰에 협조한 데 분개하여 김종철을 처단하려 했으나, 부재중이어서 김종철의 집을 불태웠다.
같은 해 음력 5월 30일에는 김국서(金國瑞) 등 부하 의병 4명과 함께 인제군 기린면(麒麟面) 서리(西里)에 살던 일진회원 엄윤문(嚴允文)을 총살하여 처단했다. 엄윤문은 김종철의 친족과 옛 부하에게 박해를 가한 바 있다.
1913년 음력 11월에는 이종서(李鍾西) 등을 이끌고 강릉시 연곡면(蓮谷面) 퇴곡리(退谷里) 유동(柳洞)의 정현삼(鄭顯三) 집에서 군자금과 군수용품을 징발했다. 1915년 5월에는 김종근(金鍾根)·장명수(張命壽)·김원실(金元實)·정대성(鄭大成)과 함께 홍천군 두촌면(斗村面)의 하영도(河影圖) 집에서 군자금을 징수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이들과 함께 강릉시 연곡면 장천리(長川里)에 들어가 자신들을 밀고한 박군팔(朴君八)을 총살했다. 그 후 체포되어 1916년 11월 경성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17년 4월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