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택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군 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칭
보안(普安)
이칭
김보안(金輔安), 김보안(金保安)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5년(고종 2)
사망 연도
1935년
출생지
평안남도 순천
정의
일제강점기 때,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 조선혁명군 사령관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평안남도 순천 출신이다. 이명은 김보안(金輔安)·김보안(金保安)이다. 호는 보안(普安)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5년 만주로 망명하여 농업에 종사했다. 1924년 3월 초순에 길림성(吉林省) 유하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정의부(正義府) 교양부 집행위원장 김용대(金容大)의 권유로 정의부에 가입했다.

정의부는 초등교육을 의무화하여 각 마을마다 소학교를 세웠다. 그리고 중등교육을 위하여 흥경현(興京縣) 왕천문(旺淸門)에 화흥중학교(化興中學校), 유하현 삼원보에 동명중학교(東明中學校), 화전현(樺甸縣) 성내(城內)에 화성의숙(華成義塾), 유하현 왕청문에 남만주학원(南滿洲學院) 등을 설치해 동포의 자제를 교육했다.

정의부에서 설립한 학교의 교사로 활동했다. 1928년에는 정의부 중앙집행위원 및 외무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1929년 11월에는 조선혁명당 조직에 참여했다.

조선혁명당의 중앙집행위원장은 현익철(玄益哲), 정치부 위원장은 현정경(玄正卿)이며, 중앙집행위원에 취임해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31년 8월에는 중앙집행위원에 재선되었으며, 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조선혁명군 사령관을 겸임했다.

1932년 1월 신빈현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1932년 11월 신의주 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35년 10월 옥사, 순국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8월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기려수필(騎驢隨筆)』(송상도)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4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독립운동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한국독립운동사』(애국동지원호회,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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