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출신. 1915년 7월에 결성된 대한광복회의 회원으로 활약하였다.
1916년 9월 광복회총사령 박상진(朴尙鎭)의 계획 아래 김진만(金鎭萬)·정운일(鄭雲馹)·최병규(崔丙圭)와 김진만의 장인인 대구 부호 서우순(徐祐淳)의 집에 들어가 군자금을 강제 모금하려다가 그 집 머슴과 마주쳐 권총을 발사하고 일행과 피신하였으나, 일본경찰에게 잡혀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을 언도받고 8년3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