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이천수장소를 결성하여 항일의병투쟁을 전개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김태원은 선봉장의 중임을 지고 안성 일대에서 의병을 초모, 1896년 1월 이천의 백현(魄峴)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천의 이현(梨峴) 전투에서도 1초군(哨軍)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돌격전을 벌였으며, 남한산성으로 본진이 옮긴 뒤에는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하였다.
남한산성전투에서 패한 뒤에는 제천의 유인석 의진을 거쳐 예천의 서상렬(徐相烈) 부대에 합세하여 의병활동을 계속하였다. 낭천(狼川: 지금의 화천)전투에서 서상렬을 잃은 김태원은 유인석을 좇아 만주의 회인현까지 배종하였다.
1905년에는 원용팔(元容八) 의진에, 1906년에는 최익현 의진의 소토장(召討將)으로 참여하였다. 1907년에는 이강년(李康秊) 의진에 참여하여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이강년이 체포된 뒤 원주로 낙향하여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을 후학에게 펼치다가 생애를 마쳤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자료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 「집의당유고」(김태원, 『한말의병자료집』, 독립기념관, 1989)
- 「김하락의진의 의병활동」(유한철,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3집,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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