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생. 1934년 일본 동경 체육전문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강동여자중학교 체육교사로 근무하였다. 1946년 5월 여경훈련소 교관으로 한국 여자경찰 창설에 기여하였으며, 1949년 7월 여자배속장교 사감을 거쳐 예비역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후 중앙 학도청년훈련소 교관으로 있으면서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생포된 여자공비의 전향을 위해 참전하였다. 1950년 6·25사변이 발발하자 이승만(李承晩)대통령에게 여자의용군 모집을 건의하여 1950년 9월 1일 육군 제1훈련소 안에 여자의용군 교육대를 창설, 초대 교육대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교육대에서는 여자배속장교 출신들을 교관으로 하여 여자의용군 1·2기 874명을 양성함으로써, 전쟁기간 동안 국군의 일원으로 활약하게 하였다. 초창기 여군 창설의 주역들은 여자배속장교 출신으로 김현숙·박을희(朴乙姬)·현성원(玄聖元) 등 11명이었다.
1950년 10월 23일에는 현역에 정식 편입하여 활동하였다. 1951년 11월에 육군본부에 여군과가 창설되면서 여군과장으로 보직되고, 편제개편에 따라 여군부장으로 있으면서 1955년 7월서울 용산에 여군훈련소를 창설하고 초대 소장직까지 겸무하였다.
1953년 3월 한국 여군으로서는 최초로 대령으로 진급하였으며, 1960년 9월 초대 여군처장으로 전역하기까지 여군 창설과 발전의 주역이었다. 예편 후 공화당 부녀분과위원장을 거쳐 제8대 전국구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1년 사망하여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