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진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경학과 역학을 연구하였으며, 고종때 호조참판에 추증된 학자.
이칭
  • 비승(丕承)
  • 사재(思齋), 연담(蓮潭), 원모당(遠慕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도강(道康)
  • 사망 연도1620년(광해군 1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40년(중종 35)
  • 출생지전라도 태인(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준하 (동덕여자대학교, 유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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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경학과 역학을 연구하였으며, 고종때 호조참판에 추증된 학자.

개설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비승(丕承), 호는 원모당(遠慕堂) · 사재(思齋) 또는 연담(蓮潭). 전라도 태인(泰仁: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출신. 김회련(金懷鍊)의 후손이며,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정여립(鄭汝立)이 혼인하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고, 또 정여립이 유상대(流觴臺)에 이르러 그를 청하였으나 병을 핑계하고 응하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귀(李貴)가 장성(長城)에서 의병을 모집하자 이에 참여, 이듬 해 장정 100여명을 거느리고 의주(義州)에 가서 선조를 배알한 다음 곡식을 모아 뱃길로 의주의 행재소(行在所)에 바쳤고, 또 의병 고경명(高敬命)에게도 군량을 보냈다. 뒤에 군자감직장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그는 경학에 밝았고, 특히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군기시정(軍器寺正)에 추증되었다가 이후 고종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남천사(藍川祠)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 있는 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 - 『매산집(梅山集)』

  • - 『이재전서(頤齋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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