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진 ()

유교
인물
조선 중기에, 경학과 역학을 연구하였으며, 고종때 호조참판에 추증된 학자.
이칭
비승(丕承)
원모당(遠慕堂), 사재(思齋), 연담(蓮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40년(중종 35)
사망 연도
1620년(광해군 12)
본관
도강(道康)
출생지
전라도 태인(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정의
조선 중기에, 경학과 역학을 연구하였으며, 고종때 호조참판에 추증된 학자.
개설

본관은 도강(道康). 자는 비승(丕承), 호는 원모당(遠慕堂)·사재(思齋) 또는 연담(蓮潭). 전라도 태인(泰仁: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출신. 김회련(金懷鍊)의 후손이며, 이항(李恒)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정여립(鄭汝立)이 혼인하기를 요구하였으나 거절하였고, 또 정여립이 유상대(流觴臺)에 이르러 그를 청하였으나 병을 핑계하고 응하지 않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귀(李貴)가 장성(長城)에서 의병을 모집하자 이에 참여, 이듬 해 장정 100여명을 거느리고 의주(義州)에 가서 선조를 배알한 다음 곡식을 모아 뱃길로 의주의 행재소(行在所)에 바쳤고, 또 의병 고경명(高敬命)에게도 군량을 보냈다. 뒤에 군자감직장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그는 경학에 밝았고, 특히 역학(易學)을 깊이 연구하였다. 군기시정(軍器寺正)에 추증되었다가 이후 고종 때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다.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에 있는 남천사(藍川祠)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 있는 오산창의사(鰲山倡義祠)에 봉향되었다.

참고문헌

『매산집(梅山集)』
『이재전서(頤齋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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