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흔 ()

고대사
인물
남북국시대 때, 신라 무열왕의 9세손으로, 상국, 대장군 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귀족 · 관리.
이칭
태(泰)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803년
사망 연도
849년
주요 관직
이찬|대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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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남북국시대 때, 신라 무열왕의 9세손으로, 상국, 대장군 등을 역임한 통일신라의 귀족 · 관리.
개설

자는 태(泰). 태종무열왕의 9세손으로, 증조부는 상재(上宰)를 지낸 이찬(伊飡) 김주원(金周元), 할아버지는 시중(侍中)을 지낸 소판(蘇判) 김종기(金宗基), 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파진찬(波珍飡) 김장여(金璋如)이며, 김양(金陽)의 사촌형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822년(헌덕왕 14) 당나라에 건너가 숙위(宿衛)하고 1년 뒤에 귀국하였는데, 이때 당나라의 목종(穆宗)으로부터 금자광록대부 시태상경(金紫光祿大夫試太常卿)의 벼슬을 받았다. 다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는 그가 당나라에 간 해가 825년이라 하였다.

그는 귀국 즉시 사명을 잘 수행한 공으로 남원태수를 제수받고, 그 뒤 여러번 승진하여 강주(康州: 지금의 晉州)의 대도독에 이르렀으며, 얼마 뒤 이찬에 올라 상국(相國)을 겸하였다.

839년(민애왕 2) 정월에는 대장군이 되어 군사 10만을 거느리고 김양 등이 지휘하는 김우징(金祐徵: 뒤의 神武王)의 군사를 대구에서 방어하다가 실패하여 정계에서 은퇴하였다.

그 뒤 소백산으로 들어가 승려들과 함께 지내다가 849년 8월 27일 산재(山齋)에서 47세로 죽었다. 그의 무덤은 나령군(奈靈郡: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에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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