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흠운 ()

고대사
인물
삼국시대 신라의 낭당대감을 역임한 군인.
이칭
이칭
김흠운(金欽運)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655년
주요 관직
낭당대감
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낭당대감을 역임한 군인.
개설

‘김흠운(金欽運)’으로 쓰기도 한다. 내물마립간의 8대손으로, 아버지는 잡찬(迊飡) 달복(達福)이다. 태종무열왕의 사위이며, 신문왕의 장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어려서는 화랑 문노(文努)의 낭도로서 수행하였으며, 명예와 기개를 중시하였다.

655년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에 북쪽 변방 33성을 빼앗기자 낭당대감(郎幢大監)으로 출전하여,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하며 전쟁에 참여하였다.

백제 땅 양산(陽山: 충청북도 영동) 밑에서 진을 치고 조천성(助川城: 충북 영동군 양산면)을 공략하려다가 백제군의 기습을 받아 패배하였다. 대사(大舍) 전지(詮知)가 일단 후퇴하여 후일을 기약하자고 권유하는 것을 뿌리치고 적과 싸우다가 끝내 대감(大監) 예파(穢破), 소감(小監) 적득(狄得)과 함께 전사하였다.

죽은 뒤 일길찬(一吉飡)에 추증되었으며, 사람들은 「양산가(陽山歌)」를 지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한다. 딸은 683년(신문왕 3) 왕비가 되어 효소왕을 낳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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