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대사간, 대사헌, 한성우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중종 32) 김안로가 사사(賜死)되자 다시 봉교로 기용되었고, 1538년(중종 33) 탁영시(擢英試)에서 장원을 차지해 문명을 떨침과 아울러 이후 수년 간 병조정랑 · 병조좌랑, 홍문관의 수찬 · 교리 · 응교 · 전한, 사헌부의 지평 · 장령 · 집의, 사간원의 헌납, 시강원의 문학 · 필선 · 보덕 등의 요직을 역임했다.
1544년(중종 39) 이조참의로 특승(特陞)된 뒤 승정원동부승지 · 성균관대사성 · 판결사를 역임했다. 대사간으로 있을 때는 윤원형(尹元衡)이 유관(柳灌) 등을 탄압하려 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체직당했다.
그 뒤 곧 대사헌이 되었지만, 권신 이기(李芑)와의 알력으로 일시 면직됐다. 뒤에 한성우윤으로 문소전(文昭殿)에 인종을 부묘(祔廟)하려 하였으며 전주부윤으로 내려가 재직 중에 병으로 죽었다.
두 차례의 장원급제로 문명을 떨쳤으며, 권신을 서슴지 않고 탄핵하는 기개가 있었다. 나주의 송재사(松齋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송재선생유고(松齋先生遺稿)』 4권이 있다. 시호는 희민(僖敏)이다.
참고문헌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 『해동잡록(海東雜錄)』
- 『송재유고(松齋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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