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라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나주문암(羅州文巖)’이라고도 한다. 경사지에 있는 이 바위의 크기는 앞에서 보면 높이가 6m, 폭이 5m에 이르며, 뒤에서 보면 1m 정도이다.
남평문씨(南平文氏)의 시조 무성공(武成公)문다성(文多省)이 바로 이곳에 탄강하였다는 설화가 『남평문씨대동문헌록』과 『호남읍지』 등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라도 남평군 동쪽에 장자못(長者池)이라는 큰 못이 있고, 그 못 가에 천 길이나 되는 높은 바위가 솟아 있었다. 하루는 당시의 군주(郡主)가 그 바위 아래에서 놀고 있는데, 바위 위에 갑자기 오색구름이 감돌면서 문득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왔다.
이상히 여긴 군주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돌 상자가 놓여 있고 그 속에 피부가 옥설(玉雪)같이 맑고 용모가 기이한 갓난아이가 들어 있었다.
이에 거두어 길렀더니 나이 5세에 문장 속에 담긴 사상을 저절로 통달하고, 무략(武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사물의 이치를 스스로 깨닫는 총기가 있었다. 그로 인해 ‘문’을 성으로 삼고 이름을 ‘다성’이라 지어주었다.
이 설화는 현재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 설화와 함께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씨족설화로 자리매김되고 있으며, 문바위는 그 설화적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큰 의의를 갖는다.
1851년에 후손들이 바위 위에 ‘文巖(문암)’이라 새긴 높이 1m 가량의 비를 세웠고, 1928년에는 ‘암각(巖閣)’을 지었으며, 1975년에 다시 옛 암각을 헐고 새롭게 단장하여 ‘문암각(文巖閣)’이라 이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