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권 7책. 활자본. 그의 생존시 그의 아들 면(冕)과 최(最)가 시 1,700여수와 문 400여편을 모아 10권으로 편집하였는데, 그가 죽은 지 10년 뒤인 1654년(효종 5) 이민구(李敏求) 등이 다시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민구의 서문과 자서(自序)가 실려 있다.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4에 시 501수, 권5·6에 서(序) 50편, 권7에 기 12편, 권8에 전(傳) 2편, 잡저 5편, 서후(書後) 14편, 발 3편, 소차(疏箚) 9편, 권9에 서(書) 2편, 척독(尺牘) 20편, 권10에 묘지명 18편, 권11에 묘표 6편, 권12에 묘갈명 9편, 묘비명 6편, 권13·14에 행장 8편, 권15에 뇌(誄) 1편, 제문 2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격조가 높고 세상만사를 떠나 자적하는 기풍이 있다. 서(序)의 「송도원수장공만출사서(送都元帥張公晩出師序)」는 인조반정 뒤에 장만(張晩)이 도원수가 되어 관서지방으로 떠날 때 그의 아버지 흠(欽)을 대신하여서 쓴 글이다.
권7의 「금강내외산제기(金剛內外山諸記)」와 「유금강소기(遊金剛小記)」는 금강산을 다녀온 기행문으로, 당시의 풍물·여정 등을 기술한 내용이다. 잡저의 「창연정설(蒼然亭說)」·「제구십주백묘한도(題仇十洲白描漢圖)」 등은 잡설에 해당하는 문학적인 글이다.
「삼전도비전액사면차(三田渡碑篆額辭免箚)」는 삼전도비 사자관(寫字官)에 임명되었을 때 병을 핑계하여 사면을 청하는 글이며, 이밖에 당시의 시무·정사에 관한 차자(箚子) 등이 있다.
이 책에 수록되지 않은 시 등을 모아 그의 외손인 김석주(金錫胄)와 생질인 박세채(朴世采) 등이 편집, 『낙전당귀전록(樂全堂歸田錄)』이라 이름하여 1684년(숙종 10) 간행된 책이 따로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