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장령, 삼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문장에 능했으며,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05년 보은현감이 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2)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했다. 이후 공조·예조의 좌랑, 호조·예조의 정랑이 되어 1611년(광해군 3)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13년 정언·헌납·전적·문학이 되었고 다시 헌납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었다.
이때 호조판서 황신(黃愼)이 이이첨(李爾瞻) 일당의 모함으로 탄핵을 받게 되자 그 무고함을 논하여 체직당했다. 수년 뒤 다시 등용되어 문학·필선·장령을 거쳐, 1615년 영천군수가 되어 통정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1619년(광해군 11) 성절사로서 중국에 다녀온 후 1621년 삼척부사가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광해군 때의 훈계가 모두 깎아내림을 당하여 통훈대부로 강등되고 유배의 벌을 받았으나 곧 풀려나와 종묘서령이 되었다. 이어 군자감·통례원·상의원의 정이 되었으며, 벼슬을 그만두고는 온양에 은거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요직에 불리었으나 모두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사후에 승정원도승지로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약천집(藥泉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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