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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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부녀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순한글 편지를 지칭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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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부녀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순한글 편지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내간(內柬)·내찰(內札)·안편지라고도 한다. 또, 순언문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언간(諺簡)·언찰(諺札)이라 하며, 순수한 우리말로는 ‘유무’·‘글발’이라고도 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뒤 조선 전기에 궁중에서 주로 궁인들에 의해 사용되기 시작한 언문서찰은 성종·선조 연간에 이르러 점차 일반 사녀층(士女層)까지 확산되었다. 이는 당시 사회제도의 제약으로 한문에 대한 학습의 기회가 극히 제한되었던 부녀자들과 남성들이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유일하게 택할 수 있는 문자는 해득이 용이한 언문뿐이므로, 자연 언문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천한 특수계층의 여성을 제외한 일반 사자층(士子層) 부녀자들은 내방(內房)에 유폐되다시피 문외 출입이 엄격하게 제약되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친정과 시집을 마음놓고 내왕하는 일이라든가 따로따로 시집간 자매들끼리 상면해서 길흉사간에 애환을 함께 나누기란 더욱 어려운 형편이므로, 내간의 일반화가 가속화되었다. 인조·숙종연간에 이르러 내간은 내방가사·언문소설과 더불어 모든 사녀들의 의사전달 수단과 함께 문학적 정서생활의 3대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내간은 거의 대부분 수신과 발신의 주체가 여성이거나, 아니면 최소한 수신·발신 중 어느 한편이 여성인 것이 보통이다. 당시의 아녀자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인 요리나 바느질과 같은 부공(婦功) 다음으로 익혀야 할 것이 언문편지투이며, 또 이러한 문투(文套)를 익혀서 내간체 문장에 능해야 범백(凡百)을 고루 갖춘 부녀로 행세할 수 있었다. 이렇듯 단아한 필치로 내방간찰을 써보냄으로써, 문밖 나들이 없이 이웃간 그리고 집안간 웃어른과 수하(手下)에 인사를 골고루 닦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내간은 보통 편지 사연에 따라 다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문안지(問安紙)로 이는 신부 문안지와 일반 문안지로 대별할 수 있다. 먼저, 신부 문안지는 초례는 올렸지만, 아직 신행은 가기 전이므로 신부가 친정에 있으면서 한번도 상면하지 못한 시조부모·시부모·시삼촌, 그리고 남편형제 및 동서 등 시집식구들에게 처음 문안드리는 편지이다. 일반 문안지는 격식에 큰 구애 없이 사연을 적되, 조사(措辭)에 있어 손위와 손아래만 구분해서 적으면 되는 것이다.

둘째, 사돈지(査頓紙)는 주로 안사돈끼리 내왕하는 편지로 간혹 ‘안사돈지’라 한다. 안사돈지의 시작은 먼저 신부 어머니가 신랑 어머니에게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두 집안이 서로 사돈이 되기 위해 신부집에서 대례(大禮)를 올리게 되는데, 이때 초례상(醮禮床)에 차려진 상수(床需)를 상수송서장(床需送書狀)과 함께 신랑집에 보내면서 신부 어머니가 쓴 사돈지를 처음으로 신랑 어머니에게 보내게 된다.

이때의 편지 내용은 대체로 먼저 문안이 있고, 그 다음에 자신의 딸이 미문(微門)에서 자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고 견문도 없는 여식을 존문(尊門)에 보내게 되어, 시부모 걱정이 되게 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우니 앞으로 친딸같이 가르쳐주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내용을 적는다. 그 다음에 대개 새사위에 대한 칭찬과 덕담 등을 적어서 신행가는 인편에 새 사돈에게 처음 인사 겸 문안편지를 보내게 된다. 이 편지에는 자신의 딸을 규중에 고이 길러 남의 집에 보내면서 앞으로 시집살이할 딸의 앞날에 대한 염려와 함께 딸 가진 어머니의 눈물어린 모정이 담겨 있다.

신랑측에서는 신랑집 어머니가 답신을 보낸다. 그 내용은 우준(愚蠢)한 자기 아들의 짝이 되게 허락하여준 데 감사하다고 언급한 뒤에, 새 며느리의 재예와 부덕이 뛰어남을 칭찬한다. 아울러 두 집안이 결친(結親)한 정의를 서로 돈독히 하자는 다짐도 함께 적어 보낸다. 이로써 첫 사돈지의 왕복이 시작된다. 이러한 안사돈지는 서로 사돈이 된 두 집안의 예절과 인사를 겸비한 편지이므로, 호기심 어린 옛 부녀자들의 관심을 제일 많이 끄는 글들이어서, 새사돈지를 받게 되면 일가의 부녀들이 다투어 돌아가면서 읽었던 것이다.

셋째, 하장(賀狀)으로 친정이나 시댁, 아니면 사돈집에 혼인·득남·수연(壽宴) 등을 비롯해 과경(科慶)·초사(初仕)·외임(外任) 등과 같은 경사를 축하하는 인사의 편지이다. 동서의 친정에 경사가 있으면 같은 동서끼리, 또 시집간 시누이의 시댁에 치하드릴 일이 있으면 시누이에게, 시댁이나 친정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치하드리는 편지를 주고 답장을 받는 것이 하장이다. 하장의 투식은 그리 까다롭지 않고, 다만 치하드리는 사연만 완곡하게 적어 보내면 되는 것이다.

넷째, 조장(弔狀)과 위장(慰狀)은 상사(喪事)에 편지로 조문하는 것이다. 조장은 시부모나 친정부모 그리고 남편의 상사 시에 조문하는 편지이고, 그밖에 시댁이나 친정의 조부모·백숙부모·아내·형제·며느리 그리고 자식의 상사시에 위로하는 편지를 위장이라 한다.

옛날 부녀자들은 비록 친정에 상사가 있어도 마음대로 분곡(奔哭)하지 못하기 때문에, 집안에 상사가 있으면 부득이 편지로 조문을 대신하였다. 또한 시집간 딸이 남편상을 당해 홀몸이 되었는데도 친정어머니는 마음놓고 딸의 집을 찾아가 직접 달래주지 못했기 때문에 편지로 이를 대신하였다.

청상에 과부가 된 딸의 처지를 못내 불쌍히 여기면서 어머니의 애끓는 심정을 담은 다음과 같은 편지가 전하여지고 있다. “그ᄉᆞ이 ᄉᆞ라 잇느냐 네게 편지를 쓰려 부ᄉᆞᆯ 드러 무어시라 니록ᄒᆞ쟈 말이냐 촌장이 ᄭᅳ너지ᄂᆞᆫᄃᆞᆺ ᄀᆞᄉᆞᆷ이 알프고 흉격이 막혀 쓸길이 업구나……. 밤이면 ᄒᆞᆫ잠을 겨오 ᄭᆡ여 담ᄇᆡ을 몃ᄃᆡ을 먹ᄂᆞᆫ지 모르고 나지면 ᄒᆞᆫ참을 삭겨 안져실슈 업셔 당하의 ᄇᆡ회ᄒᆞ다 곳곳지네 슈ᄌᆞᆨ이 만ᄒᆞ니 네가 ᄂᆡ압희셔 쥭어기로 이밧 더 보기 슬켓느냐 네가 쥭어시면 늬 ᄒᆞᆫ번 통곡 ᄒᆞᆯ○름이지 이ᄃᆡ도록 가ᄉᆞᆷ의 못시 되겟느냐…….” 너무나 가련하여 차라리 딸이 죽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다. 이밖에도 “여자 되온 것이 한이오며”, “쓸데없는 여자의 몸이 되어”, 또는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자 “병환시 시탕 한 그릇을 받들어 종효치 못했으며 임종시 유교 한 마디를 받잡지 못하옵고 생리사별이 종천영결이 되오니”라는 사연으로 볼 때, 당시 여성의 애끓는 사연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다섯째, 기타 집안 잔치 등으로 친척을 초대하거나 세찬(歲饌) 또는 여러 방물(方物) 등을 구해 보내면서 사연을 적은 편지를 함께 보내고 답장을 쓴다. 이 편지야말로 비록 적삼 한 감, 버선 한 켤레에다 두어 줄의 사연이라 할지라도, 여인들이 고달픈 생활을 잠시 잊고 육친의 따뜻한 정을 가슴 깊이 맛보며, 또 초대받고 만날 기약으로 가슴 설레게 하는 사연이 담긴 편지였던 것이다.

내간의 편지투식은 신부 문안지의 경우는 완전히 형식화된 틀에 맞추어 썼고, 다만 받는 이의 칭호만 할아바님·아바님·어마님·아자바님 등으로 바꾸어 적었다. 그밖의 편지, 특히 친정으로 보내는 편지는 허물 없이 사연을 있는 그대로 적으면 되었다.

그러나 조사(措辭)에 있어 손위와 손아래의 구분이 엄격하였다. 예를 들어 ‘아무아무전 샹ᄉᆞᆯ이[上白是]’는 반드시 친정이나 시댁의 조부모·부모·삼촌에 한해서만 쓴다. 편지 끝의 보내는 날짜 밑에 친부모에게 드리는 경우, 아들이면 ‘ᄌᆞᄉᆞᆯ이’, 딸이면 ‘식ᄉᆞᆯ이’이고, 시댁 어른이면 ‘손부ᄉᆞᆯ이’·‘ᄌᆞ부ᄉᆞᆯ이’·‘질부ᄉᆞᆯ이’라 적는다. 그밖에 어른에게는 ‘샹셔’·‘답샹셔’, 평교간(平交間)이면 ‘상장(上狀)’·‘답상장(答上狀)’, 그리고 손아래에게는 ‘봉장(奉狀)’·‘답봉장(答奉狀)’이라 쓴다. 또한 손위 어른에게는 ‘기후안녕’이나 ‘제후안녕’이라 해야 되며, 손아래에는 ‘기운평안’이라 해야 된다. 그리고 손위에는 ‘복모(伏慕)’, 손아래는 ‘향념(向念)’이라 적어야 된다.

그밖에 조장이나 위장의 경우, 부모의 상사에는 ‘망극지통(罔極之痛)’, 남편의 상사에는 ‘성붕지통(城崩之痛)’, 형제의 상사에는 ‘할반지통(割半之痛)’, 아내의 상사에는 ‘고분지통(叩盆之痛)’, 그리고 자녀의 상사에는 ‘참척(慘慽)’이라 적어야 한다.

조선시대 식자층인 사대부로부터 천대만 받던 언문이 부녀자들의 손에 의해 쓰여지면서, 내간은 부녀자들이 주체가 되어 실답고 정다운 세련미를 보여주는 내간체 문장형식을 완성시켰다. 내간체 문장은 수기문학(手記文學) 발생의 연원과 모태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내방가사 및 언문소설과 함께 규방문학의 세 기둥이 되어, 이 셋이 한 궤적을 밟으면서 한글의 보존과 전수를 가능하게 하였다. 한편으로 내간을 통해 옛 여성의 생활상과 애환을 살펴볼 수도 있다.

참고문헌

『언간독』 상·하권(방각본)
『정보언간독』(丙戌冶洞刊本)
『언간의 연구』(김일근, 건국대학교출판부, 1986)
「한국전통사회의 내간에 대하여」(신정숙, 『국어국문학』 37·38, 1967)
「이조여성과 한글보존」(강윤호, 『한국여성문화논총』,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58)
『근조내간문선』(이병기, 국제문화관, 1948)
『규문보감』 2(서우석, 1936)
관련 미디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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