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인보(仁甫), 호는 사인당(四印堂). 아버지는 사과(司果) 노적(盧積)이며,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내금위(內禁衛) 임중(任重)의 딸이다.
1539년(중종 3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성균관학유·박사를 거쳐 공조·예조·호조·형조의 낭관(郎官)을 역임하였다. 그 뒤 사헌부지평에 올랐으나 진복창(陳復昌)의 탄핵을 받아 좌천되어 나주목사·성주목사 등을 지냈다.
성주목사로 있을 때에는 유학을 숭상하여 천곡서원(川谷書院)을 세웠다. 1557년(명종 12) 이이(李珥)를 사위로 맞았다. 만년에는 숙천부사(肅川府使)로 선정을 베풀어 1564년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 또는 벼슬아치의 품계를 올려주는 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