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대재(大哉), 호는 송암(松菴). 충청남도 공주 출신.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자 이에 분개하여 1906년 공주 용당(龍堂)에서 동지 30명을 규합하여 의진을 구성하고, 의병장으로 진안·금산·안의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150여 명의 의병을 인솔, 금산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08년 무주·진산(珍山)·고산(高山)·고부 등지에서 60여 회에 걸쳐 일본군과 교전하다가 붙잡혀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언도받고 제주도 추자(楸子)로 유배되었다.
1910년 특사령으로 사면, 귀향 후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혀서 2년간 복역하였다. 광복이 되자 초대 공주유도회장(公州儒道會長)과 공주군민족정기단장(公州郡民族正氣團長)이 되었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