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의미의 논리학을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사고방식에 타당한 형식과 부당한 형식이 있다고 보고, 그 타당성을 식별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체계화시켰다. 그가 논리학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연역 추리의 타당성이 논증의 형식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형식논리학(formal logic)이라고도 부른다.
논리학은 어떤 주장을 하는 명제들의 논리적인 연결 관계를 분별하는 원칙과 절차에 관한 학문이다. 그런데 논리학은 명제들의 연결 관계에만 주목할 뿐이지, 그 명제들의 참·거짓을 확인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논증을 구성하고 있는 명제들의 일부 또는 전부가 거짓일지라도, 전체적으로는 타당한 논증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한국의 학문적 전통에서 서양 논리학에 비견할 만한 수준의 논리학은 개발되지 않았다. 다만 동아시아 문화권의 종주국인 중국에서 한 때 유행하였던 묵가나 명가의 논리가 단편적으로 소개되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묵자(479∼381 B.C.)는 모든 사유가 이름(名), 즉 개념으로부터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름에는 달명(達名), 유명(類名), 사명(私名)의 3종류가 있는데, ‘달명’은 유개념(類槪念), ‘유명’은 종개념(種槪念), ‘사명’은 고유명사에 해당한다. 이 세 종류의 개념(名) 사이에 외연에 의한 포섭관계가 성립된다. 포섭관계에 의하여 명(名)과 사(辭)와 설(說)이라는 세 종류의 변론(辯論)이 생긴다.
‘명’은 개념이고, ‘사’는 두 개의 개념이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현대 논리학의 ‘명제’에 해당된다. ‘사’는 하나의 개념(名)이 다른 개념(名)에 외연적으로 포섭될 때 성립한다. 그리고 ‘설’은 이유를 제시하는 것으로서, 현대적 의미의 추리에 해당한다. 즉 ‘설’은 하나의 명제에서 다른 명제를 도출해내는 과정을 의미한다.
혜시(惠施, 380∼300 B.C.)와 공손룡(公孫龍, 325∼250 B.C.)으로 대표되는 명가(名家)의 논리는 흔히 궤변이라고 비하되기도 하지만, 그 대표적 논리인 백마비마(白馬非馬)론은 궤변이 아니다. 흰 말[白馬]이라는 개념의 외연은 말[馬]이라는 개념의 외연보다 좁다. ‘흰 말’은 특정한 말의 색깔을 지시하는 개념이고, ‘말’은 흰 말, 검은 말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 두 개념의 외연은 동일하지 않다. 명가는 이 논설을 통하여 개념의 외연과 포섭관계를 밝히는 예리한 논리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그밖에 ‘모순(矛盾)이라는 고사성어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한비자(韓非子, ?∼233 B.C.)는 서양 논리학의 사유 법칙 중 하나인 모순율을 창과 방패의 우화를 통해서 제시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창(矛)으로도 뚫을 수 없는 방패(盾)와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矛)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반대되는 사실을 진술하는 명제가 동시에 참이 될 수 없다는 모순율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의 논리학을 개념의 논리학이라고 한다면, 인도의 논리학은 추리의 논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도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과 비슷한 ‘인명(因明)’논리학을 발전시켰다. 5세기 경 불교의 논리학자 진나(陳那, Dignaga)가 등장하기 이전의 인도 논리학을 ‘고인명(古因明)’, 진나 이후에 완성된 논리학을 ‘신인명(新因明)’이라고 부른다.
신인명에서는 개념의 외연관계와 추리의 형식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주어개념이 술어개념에 포섭되는 논리적 관계를 ‘편충(遍充, vyapti)’라고 하여 이를 중심개념으로 삼는다. 이것은 서양 논리학의 주연(周延, distribution)에 해당된다.
주어와 술어의 외연적인 관계에 의해서 추리가 성립되는데, 이 추리를 고인명 이후 신인명에 이르기까지 비량(比量, anumana)이라고 하였다. 고인명에서 비량은 다섯 개의 명제로 구성되기 때문에 ‘오분작법(五分作法)’, ‘오지작법(五支作法)’이라고 한다. 다섯 개의 명제는 종(宗), 인(因), 유(喩), 합(合), 결(結)인데, 이 가운데 ‘종’과 ‘결’은 똑같은 명제이고, 서양 논리학의 결론에 해당한다. ‘인’은 소전제에, ‘유’는 대전제에 해당하고, ‘합’은 종·인·유의 결합이다.
묵가나 명가 그리고 불교의 논리학이 우리나라 학자의 관심 대상이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 불교 논리학의 경우, 그 자체가 심오한 철학이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점이 불교 논리학을 생소한 학문으로 만든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논리학’이라는 단어는 곧 서양에서 도입된 논리학을 지칭하는 말이다. 언제 서양 논리학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서양 철학의 유입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소개되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1907년의 전문학교 교과 과정에 논리학이 개설되기 시작하였지만,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된 것은 1930년대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논리학이 개설된 이후일 것이다. 해방 이후 논리학은 모든 대학의 철학과에서 주요 과목 중 하나로 개설되었다. 전통적으로 철학의 네 분야(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논리학) 중 하나인 논리학은 교과 과정에 빠짐없이 들어 있었지만,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전반에는 강사의 부족 등으로 제대로 교수되지는 못했다.
1960년대를 거쳐서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분석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이 많아지면서 논리학의 강의와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논리학은 분석철학을 하기 위한 도구 과목 정도로 취급되어 본격적인 연구는 1980년대 후반 이후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학의 타 분과에 비하여 연구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논리학 연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논리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기호논리학(記號論理學), 수리논리학(數理論理學)에 관한 연구는 미미한 형편이며, 대학의 수학과에서도 극소수의 학자들만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런 취약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1980년대 중반 고등학교에 논리학이 선택 과목으로 개설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이것은 독일, 프랑스와 같은 오랜 철학적 전통을 가진 국가를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은 대학에서 신입생 선발요건으로 논술을 강조함으로써 논리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것이 논리학 연구의 활성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