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라는 용어는 일본학자인 니시 아마네(西周)가 번역한 말이다. 처음에는 원어인 필로소피아(philosophia)를 발음대로 표기하여 ‘비록소비아(費祿蘇非亞)’, ‘비록소비아(斐錄所費亞)’, ‘비룡소비아(飛龍小飛阿)’라고 하거나, 성리학의 용어인 이학(理學), 궁리학(窮理學) 등으로 표기하였는데, 이인재의 ≪철학고변 哲學攷辨≫이 출간되면서 우리 나라에서도 철학이라는 용어가 정착되기 시작하였다.
서양철학이 언제 처음으로 소개되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17세기 천주교의 도입과 함께 시작되었으리라는 것이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철학이 정의되고 설명되는 것은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이다. 최초의 철학 교육은 1905년에 평양의 숭실학당에서 선교사 번하이젤(Bern Heisel, 片夏薛)에 의해 실시되었다.
이 무렵 유학자들에 의해 서양 철학이 소개되기도 하였는데, 이정직은 <강씨철학대략 康氏哲學大略>이라는 칸트 철학에 관한 논문을 썼고, 전병훈은 그의 ≪정신철학통편≫에서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다루었고, 이인재는 1912년 ≪철학고변≫에서 서양의 고대철학을 소개하였다.
1920년대에 이르러 서양철학은 해외 유학생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1921년에 이관용(李灌鎔)이 독일에서 <의욕론-의식의 근본사실로서>라는 주제로 우리 나라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25년에는 백성욱이 <불교의 형이상학>으로, 1929년에는 안호상이 <헤르만 로체의 관계문제를 위한 의미>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26년에는 3·1 운동 이후 실시된 일제의 회유책의 일환으로 경성제국대학에 철학과가 설치되었다.
1930년대부터 경성제국대학 철학과 졸업생이 배출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중심으로 ≪신흥≫이라는 잡지가 창간되었고, 서양철학연구가 서서히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에 신남철은 그의 ≪역사철학≫에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일본제국주의를 비판하였다. 또한 그는 박종홍·박치우 등과 함께 철학연구회를 조직하여 한국인 중심의 본격적인 철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박종홍과 박치우는 서양철학이 우리 나라에 뿌리내리는 데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유학생이 아니면서도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으며, ‘철학의 참 뜻은 실천하는 데 있다’는 기치 아래 철학 활동을 하였다. 박종홍은 이후 우리 나라 철학계를 주도하며 철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1931년에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한치진의 ≪철학개론≫은 광복 이후까지 서양철학의 대표적인 입문서로 사용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정부 수립까지의 시기에는 잠시나마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반공이라는 국시(國是) 때문에 정부 수립 이후에는 적극적인 연구나 활동이 퇴조하였다.
1950년대부터는 헤겔의 독일 관념론과 실존철학이 풍미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실존철학은 빠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박종홍은 ≪철학개론강의≫와 ≪철학개설≫ 등의 저술을 통해 본격적으로 실존철학의 문제를 다루었다. 1953년에는 한국철학회가 창립되어 현재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연구 학회로서 자리잡고 있다.
조가경은 1960년대 초 실존 철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였는데, 당시로서는 생소한 철학자였던 셸링과 후설에게서 실존철학의 단서를 찾아내 사르트르와 하이데거에 이르는 실존철학의 계보를 일관되게 서술하였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철학 연구의 분야가 좀더 다양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유학과 원전의 분석을 통해 탄탄한 기초를 쌓은 학자들에 의해 좀더 깊이 있고 치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이 시기에 그간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던 영미철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영미철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경험론이나 논리철학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으며, 실용주의에 대한 연구도 교육문제를 다룬 듀이의 저술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실용주의의 창시자이며 그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퍼스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전무하여 실용주의가 추구하는 진정한 의미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
한편, 195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현상학의 연구도 본격화되었으며, 1978년에는 한국현상학회가 창립되었다. 분석철학은 1960년대 말에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여 1970년를 거치면서 그 영향력을 확대하여 나갔다. 독일철학의 난해한 언어와 지나친 심오함에 대한 반발에서 명료한 언어와 논리성을 강조하는 분석 철학이 소장학자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다. 한편, 미국 브라운대학의 석좌교수인 김재권은 그의 ‘심신수반(心身隨伴) 이론’을 통해 현재 세계적인 철학자의 반열에 올라 서 있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까지는 암울한 정치 현실로 인해 사회철학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시기였다. 이들은 후에 한국철학사상연구회를 결성하였고 계간지 ≪시대와 철학≫을 출간하였다. 이 시기에 일단의 학자들에 의해 보다 대중적인 저술들이 발표되었는데, 이들이 철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철학을 저속화시켰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동시에 내려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로는 대륙철학과 영미철학이라는 두 가지 큰 흐름 속에서 서양철학의 연구는 더욱 더 활발해지고 있다. 독일관념론에 대한 연구는 처음에는 헤겔과 칸트가 그 주된 대상이었지만, 후설을 중심으로 하는 현상학과 하이데거 철학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해석학이 새로운 연구 분야로 각광받기도 하였다.
영미철학에 대한 연구, 예컨대 언어분석, 심신관계에 대한 연구로부터 최근의 신실용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질적, 양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세계적인 철학자들의 한국 방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기퍼드 강좌(Gifford Lecture)와 유사한 석학 강좌가 설치되어 한국의 철학도들이 세계적인 철학자들의 강의를 직접 듣고 토론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이와 같이 서양철학의 연구는 이제 원전에 대한 번역이나 주석을 다는 정도의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 유능하고 성실한 학자들에 의해 심도있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서양철학의 여러 분야에서 분과학회를 구성하여 정기적인 학술회의 등을 개최하고 있으며, 1980년대 이후로는 대부분의 종합대학에 철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최근에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는 서양철학에 대한 탄탄한 지식을 가진 철학도들이 서양과 동양 사상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철학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분야에 도전하는 소수의 학자들 특히 김형효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새로운 해석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서 지속적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