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大曲)에 대비하여 소곡(小曲)을 말하듯, 단가는 언제나 장가에 대칭되는 바로서 특수한 어떤 장가의 특수한 어떤 단가를 뜻한다. 예컨대 장가 「진작(眞勺)」 만(慢)·중(中)·삭(數) 3기(三機)에 대비하여 단가 「대엽」(大葉) 만·중·삭 3기가 있었고, 장가 「북전」(北殿)에 대비하여 단가 「북전」이 또한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장가의 대편(大篇)에 속하는 판소리는 여러 국면에 그 나름의 단가를 넣어 부르니, 판소리 「춘향가」(春香歌)에 삽입되는 잡가 「옥중가」(獄中歌)·「십장가(十杖歌)」 등도 그 쓰임은 또한 단가다. 서도의 「수심가」·「배따라기」 등은 장가와 단가를 한꺼번에 이어 부르고, 이로써 완결된 하나의 편장(篇章)을 이룬다.
단가의 연원은 문헌이 없어서 상고하기 어렵다. 오늘날 전하는 예로만 말하면, 고려 속악가사에 보이는 여러 장가는 단가의 기원 형태와 장가에 기여하는 바의 기능을 추찰할 만한 자료다. 예컨대 「동동」(動動)과 「정읍」(井邑)」은 본디 2구 형식에 지나지 않던 단가를 전(前)·중(中)·후(後) 3강(三腔)에 나누어 옮기고 여기에 부(附)·대(大)·중(中)·소(小) 4엽(葉)을 붙인 다음에 이러한 전체를 다시 거듭해서 쌍조(雙調)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단가를 거듭해서 두 번 변주하고 여기에 다시 또 하나의 단가를 덧붙인 사례다. 이밖에 「정석가」(鄭石歌)·「서경별곡」(西京別曲)·「만전춘」(滿殿春) 및 「한림별곡」(翰林別曲) 등은 단가를 거듭해서 연장(聯章)하는 방식으로 장가를 이룬 것이다.
단가의 주류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조선 시대로 말하면, 「진작」의 형식을 계승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봉황음」(鳳凰吟)」 등의 장가에 대응하는 바로서 「대엽」(大葉) 만·중·삭이 차례로 단가의 중심을 차지하여 나갔다. 여기서 이른바 만·중·삭은 본디 속도에 따른 변주를 분류한 것인데, 이것은 다시 악조에 따른 변주 평(平)·우(羽)·계면(界面) 3조와 선율에 따른 변주 초(初)·이(二)·삼(三) 3장의 상투적 형식을 낳았다. 이러한 상투적 형식은 특히 「삭대엽」(數大葉)의 경우에 있어서 가장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삭대엽은 또한 창법에 따른 변주 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를 낳았고, 장가의 형태로 복귀하는 듯한 형식의 이른바 만횡(蔓橫)과 편(編)을 낳기도 하였다.
우리가 오늘날 「시조」(時調)라고 일컫는 바의 가곡은 단가 형태의 「대엽」이 이상과 같이 연변하여 다양한 종류의 단가를 파생시키는 와중에 단가 형태의 「북전」이 변형되어 나온 것이다. 「시조」는 「대엽」의 가사를 가져다 쓰지만, 마지막 한 어절을 잘라내야만 했을 정도로 악곡의 길이가 짧았다. 「시조」의 악보는 19세기 초반에 이루어진 『유예지』(游藝志)와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에 맨 처음 나온다. 반면에, 1572년에 이루어진 『금합자보』(琴合字譜)는 ‘만대엽(慢大葉)’을, 1610년에 이루어진 『양금신보』(梁琴新譜)는 ‘중대엽(中大葉)’을 단가의 주류로 적었다. 그러니 ‘대엽’을 통틀어 ‘시조’라고 부르는 오늘날 관습은 근시안적 발상에서 비롯된 용어의 폐단이라고 하겠다.
단가는 장가를 따로 세워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단순히 짧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다 단가인 것이 아니다. 단가는 시대에 따라 그 주류가 달랐다. 따라서 근현대의 단가를 조선 시대의 단가와 같은 것으로 보거나 조선 시대의 단가를 고려 시대의 단가와 같은 것으로 보거나 하는 것은 한낱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단가는 그것이 삽입될 수 있는 장가의 형태에 따라 악곡의 형식과 규모와 성격이 모두 다 달랐다. 따라서 「춘향가」에 쓰이는 이것을 단가라고 부르는 관행이 「수심가」에 쓰이는 저것을 또한 단가라고 부르는 관행과 더불어 서로 모순을 빚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