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상감영 측우대

  • 과학
  • 역사
  • 물품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16길 기상청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측우기 받침대.
물품
  • 소장처국립기상박물관
  • 용도받침대
  • 재질
  • 제작 시기1770년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상호 (서울대학교)
  • 최종수정 2026년 04월 2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서울특별시 동작구 여의대방로 16길 기상청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측우기 받침대.

개설

202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측우대는 1770(영조 46) 청동제 측우기와 함께 제작된 것으로서, 본래는 대구감영(大邱監營) 선화당(宣化堂)에 있었다.

대석의 앞면과 뒷면의 중앙부분에는 ‘측우대(測雨臺)’, 뒷면의 왼쪽에 ‘乾隆庚寅五月造(건륭경인오월조)’라고 뚜렷이 음각되어 있다.

내용

『영조실록』 권114 정축조(丁丑條)에 의하면, “세종조의 구제(舊制)에 따라 측우기를 만들어 창덕궁과 경희궁의 양궐과 8도 양도(兩都)에 모두 제작, 설치하여 우량(雨量)의 다소를 측정하게 하였고, 양운관(兩雲觀)이 모두 높이 포백1척(布帛一尺), 길이 8촌(寸)의 석대를 만들고 대 위에 길이 1촌의 원혈(圓穴)을 파서 측우기를 올려놓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징

측우대의 높이는 46㎝, 너비는 37㎝, 지름는 16㎝, 길이는 4.3㎝이다.

현황

1917년 『조선고대관측기록보고』에 따르면, 영조 46년에 제작된 측우기는 모두 7기(器)가 있었다. 그 중 대석(臺石)만 남아 있는 것이 4기(基)가 있었으나, 현재 측우기는 모두 없어지고, 대석도 대구선화당 측우대 하나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측우대는 제작연대가 뚜렷하고 실록의 기록과도 일치하는 것으로서, 과학문화사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서울육백년사』Ⅳ(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 「이조시대의 강우량 측정법에 대하여」(김상운, 『향토서울』16, 1964)

  • - 『朝鮮古代觀測記錄調査報告』(和田雄治, 朝鮮總督府觀測所, 191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