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사성리 고인돌

  • 역사
  • 유적
  • 청동기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남규 (서울대학교, 고고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전광역시 동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남방식 고인돌. 지석묘.

내용

1기만이 발견되었고, 1977년 대청댐 수몰지구 유적발굴조사의 일환으로 충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하였다.

금강의 작은 지류인 주안천(周岸川)이 흐르는 동면 지역은 대청댐 수몰지구 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이루는 곳이다. 고인돌은 높이 225m의 꾀꼬리봉으로부터 내려오는 산록의 경작지대에 있다.

비교적 얇은 자연석으로 된 덮개돌[上石]은 길이 2.6m, 너비 2.4m, 두께 약 45㎝의 규모로서, 장축(長軸)이 10° 편북서향(偏北西向)으로 지표면에 바로 놓여 있었다. 외견상 남방식(뚜껑식) 고인돌의 형태를 보이고 있었다.

고인돌은 서쪽에서 보면 덮개돌이 조금 지상으로 들린 것 같은 외관을 나타낸다. 그 뒷면 중앙에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송씨 문중의 비석이 얹혀져 있었다.

한편, 덮개돌 윗면에서는 지름 5㎝ 내외의 작은 구멍인 성혈(性穴)이 확인되었다. 그 위치는 각각 북변(北邊)의 3개와 동남쪽 구석의 1개로 되어 있다.

덮개돌 아래에는 동서 길이 2m, 남북 너비 1.5m 정도의 범위로 30∼40㎝ 크기의 석괴(石塊)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하부의 돌덧널[石槨]은 파괴가 심하긴 하나, 규모가 대략 길이 1.2m, 너비 0.4m, 깊이 0.3m 가량되고, 네 벽은 두 겹 정도로 쌓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돌덧널의 장축은 덮개돌과 마찬가지로 동서방향이었다. 바닥은 아무런 시설도 없는 흙바닥이었다.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은 한 점도 없었다.

의의와 평가

사성동 북쪽을 흐르는 금강의 대안(對岸)인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가호리지역에서도 과거 여러 기의 돌널무덤이 발견되었고, 대청댐 수몰지구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충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 2기의 고인돌이 조사된 바 있다. 따라서 이 지역 일대는 청동기시대 소규모의 집단이 거주하던 문화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대청댐 수몰지구 유적 발굴 보고서』충청남도편(충남대학교박물관, 197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