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년(순조 2) 이상정의 조카 이우(李㙖)의 주선으로 원집이 간행되었다. 속집은 성립 과정과 연대를 자세히 알 수 없다. 외증손 유치명(柳致明)에 의해 『대산선생실기(大山先生實記)』와 『고산급문록(高山及門錄)』이 간행되었다. 이들은 각기 간행되었다가 중간에 판본이 소실되었는데, 1925년 6세손 이성구(李性求) 등이 구본에 근거해 중간하였다.
원집 52권, 속집 4권, 『대산선생실기』 10권, 『고산급문록』 3권, 합 69권.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수에 목록이 따로 있는데, 목록 상(上)에 권1∼16, 목록 하(下)에 권17∼52가 수록되어 있다. 원집은 권1∼3에 시 460수, 권4에 소 6편, 권5∼38에 서(書) 751편, 권39∼42에 잡저 33편, 권43·44에 서(序) 32편, 기 11편, 권45에 발 45편, 권46에 잠 1편, 명 3편, 찬(贊) 1편, 상량문 3편, 애사 3편, 축문 21편, 제문 22편, 권47에 비문 6편, 묘지명 12편, 권48에 묘갈명 19편, 권49∼52에 행장 31편, 속집은 권1에 사(辭) 1편, 시 15수, 소 1편, 서(書) 52편, 권2에 잡저 2편, 서(序) 5편, 기 5편, 발 4편, 상량문 4편, 권3에 애사 3편, 고유문 17편, 제문 6편, 묘지명 5편, 묘갈명 5편, 권4에 행장 11편이 수록되어 있다.
『대산선생실기』는 권1에 세계보·연보 각 1편, 권2에 행장·묘지명·묘갈명·신도비명 각 1편, 권3에 서술(敍述)·관규록(管窺錄) 각 1편, 권4에 유사 1편, 권5·6에 언행록 2편, 권7·8에 경전강의 2편, 권9에 일기 1편, 만사·제문, 권10에 고산지(高山誌) 1편, 『고산급문록』은 권1∼3에 제자 273인의 인적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경치와 계절에 부쳐 한가롭고 고요한 정서를 묘사한 것이 대부분이며, 시사를 다룬 것은 거의 없다. 그 중에서 「남유록(南遊錄)」은 연일현감으로 있을 때 접왜사(接倭使)로서 경주·동래 등지를 유람하며 지은 것이고, 「구절(九絶)」·「칠곡(七曲)」은 대산서당의 주위 경관을 읊은 것이다. 그밖에 자신의 감회를 읊은 것과 선현의 운을 따서 지은 것, 만시 등이 있다.
소의 「삼사형조참의소(三辭刑曹參議疏)」는 형조참의를 사직하면서 올린 만언소(萬言疏)로, 입지(立志)·명리(明理)·거경(居敬)·체천(體天)·납간(納諫)·흥학(興學)·용인(用人)·애민(愛民)·상검(尙儉) 등 9조목의 군덕을 권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750편에 달하는 서간은 문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학문적인 내용이 대부분으로 선배나 동배들과 의견을 교환한 것과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다. 그 가운데 권상일(權相一)과 이기(理氣)의 선후를 논변한 「답권청대서(答權淸臺書)」, 권만(權萬)과 경학(經學)과 성리학의 관계를 논한 「답권강좌서(答權江左書)」, 태극도(太極圖)에 관한 논변을 담은 「답이천유서(答李天牖書)」, 인(仁)에 대해 논한 「답김퇴보서(答金退甫書)」, 왕도와 패도에 관해 논한 「여김광천서(與金光天書)」 등이 그의 사상적 터전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잡저는 저자의 사상을 이루는 골간으로, 특히 「솔성지위도설(率性之謂道說)」·「일성구사덕설(一性具四德說)」·「이기동정설(理氣動靜說)」·「이기선후설(理氣先後說)」·「심무출입설(心無出入說)」·「사단칠정설(四端七情說)」 등에는 성리학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황(李滉)의 학문을 계승하여, 존리적(尊理的)인 견지에서 인성론(人性論)을 해명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잡저 가운데 「독성학집요(讀聖學輯要)」는 주자서와 퇴계서를 탐독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수신과 제가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항목을 골라서 적은 것이고, 「과거사의(科擧私議)」는 과거제도 시행 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한 것이며, 「재사학규(齋舍學規)」는 서당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규정을 만든 것이다. 「고산지」는 그가 죽은 뒤 향사 문제 등에 관한 기록을 모아 정리한 것이다. 『고산급문록』은 그의 제자들을 수록한 것으로 이춘부(李春溥)·유도원(柳道源)·이종수(李宗洙) 등 173명의 명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