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 (amateurboxing)

체육
단체
국내 아마추어복싱의 보급과 발전을 도모하고 이를 관장하는 경기단체.
정의
국내 아마추어복싱의 보급과 발전을 도모하고 이를 관장하는 경기단체.
연원 및 변천

일제강점기 초기인 1912년 10월 7일 광무대 단성사의 박승필이 유각권투구락부를 조직하였다. 1922년 YMCA가 연중행사로 실내운동회 때 복싱경기를 소개하였고, 1924년 9월 YMCA는 정식으로 복싱부를 창설하고 링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925년 1월 30일 제9회 YMCA운동회 때는 규범과 설비를 갖추어 정식종목으로 채택하였다.

그 뒤에 1932년 1월 20일 전조선아마추어권투연맹이 결성되었다. 1933년 조선체육회(대한체육회 전신)에서는 제2회 전국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별해야 한다는 취지 아래 종로 백합원에서 회합을 갖고 아마추어 규약을 선포하였다.

지금의 대한아마추어복싱연맹의 전신인 조선아마튜어권투연맹은 1934년 1월 조선권투구락부·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조선무덕관권투부·경성권투구락부·선만권투회·수원권투구락부 등에서 각 2명씩 총 12명이 천향원(天香園)에 모여 발족회를 가지고, 초대회장에 유억겸(兪億兼)을 추대함으로써 발족을 보았다. 수문연무(修文鍊武)의 민족적 요청에 부응하고 권투를 통하여 무도의 정신을 보급시키며, 대외적으로 전조선을 대표하는 아마추어권투단체의 통일조직 결성을 발족의 취지로 삼았다.

8·15광복 후에 1945년 10월 ‘대한아마튜어권투연맹’으로 개칭하였고, 1946년 제1회 조선아마튜어권투선수권대회 겸 올림픽파견 제1차 선발전의 개최를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우리 나라 아마추어복싱의 발전에 주도적 구실을 하고 있다. 1947년 국제아마추어복싱연맹(AIBA)에 가입하였고, 1953년 5월 대한체육회에 정식 가맹단체로 등록하였다. 그리고 1962년 12월 3일 아시아아마추어복싱연맹(FAAB)의 창설회원국이 되었다. 1963년 2월 ‘대한아마튜어복싱연맹’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설립목적

연맹의 설립목적은 대한민국 아마추어복싱계를 지도 통할하여 국민의 체위향상과 우수한 경기자를 양성하여 국위선양을 도모함으로써 민족문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기능과 역할

주요 기능은 1) 국내사업으로 ① 전국아마추어복싱 선수권대회 및 각종 경기대회의 주최, 주관 및 공연, ② 아마추어복싱경기의 지도, 장려와 통합, ③ 경기규칙의 제정 및 해석, ④ 지도자의 양성과 자격의 심사 및 인정, ⑤ 복싱경기 시설 및 용구의 연구개선과 규격의 사정, ⑥ 복싱경기 보급에 관한 강습회, 전시회 및 순회지도, ⑦ 국가대표 선수 후보선수 육성과 강화훈련 실시 등이다.

  1. 국제사업으로는 ① 올림픽대회 참가, ② 세계선수권대회 참가, ③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④ 아시아선수권대회 참가, ⑤ 월드컵대회 참가, ⑥ 서울컵국제대회 개최, ⑦ 기타 주요 국제회의 및 경기대회 참가 및 개최, ⑧ 대표선수 및 후보선수 해외전지훈련 등이다.
현황

조직은 기구로 이사회·대의원총회·사무국이 있고, 회장 1명, 부회장 2명, 전무이사 1명, 이사 19명, 감사 2명 등 모두 25명의 선임임원과 18명의 대의원 및 위촉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맹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오륜동의 올림픽회관 안에 있다.

참고문헌

『대한체육회70년』(대한체육회,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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