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984. 전라남도 순천 출생.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서 1929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복싱의 창시자 와타나베 밑에서 수련하면서 무역학교에 다녔다. 1930년 10월 제 5회 전일본선수권대회 플라이급 결승전에서 고토히로를 1회 TKO로 물리쳤으며, 이를 시작으로 많은 경기에서 연승하였다.
특히, 일본의 우상인 라이트급 챔피언 피스톤 후리구치를 4회 KO로 물리쳐버리자 일본의 제일인자라 하였다. 이로 인하여 국권 상실하에서 암울한 시기를 지내던 우리민족에게 커다란 기쁨과 감격을 안겨주어,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대회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한 것과 유사한 성원을 받았다.
1931년에 프로로 전향, 같은 해에 당시 전일본 플라이급 챔피언 가시와 우라코로와의 대전에서 1회 KO승의 신기록을 수립하여 화제가 되었다. 그의 무서운 펀치가 전 일본에 알려져 ‘복싱의 신’이라 불렸으며, 그 뒤 적수로 대전할 선수가 없어 고심하던 중 1932년에 프로권투선수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원정을 하게 되었다.
원정경기에서 잭카노와 대전하여 TKO로 물리친 뒤 계속 매시합에서 3연속 KO승을 거두어 미국에서도 그의 명성이 드높았다. 1936년에는 세계챔피언인 양도미와 3번에 걸친 경기에서 1승1무1패로 세계 6위에 올랐는데, 이 경기는 무승부처럼 보이지만 적지에서 단신으로 싸운 입장에서 본다면 승리와 다름없다는 당시의 평을 받았다.
대전료는 모두 고향으로 보내어 선산과 제각(祭閣)을 마련, 주위의 칭송을 받기도 하였다. 4년 동안의 미국원정을 마치고 귀국, 후진육성과 권투발전에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