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통하여 항일독립의식을 높여 구국을 하자는 목적 아래 설립하였다. 우리 나라에서 노령으로 이주한 최초의 시기는 1860년대 초였고, 1910년 8월 국권상실 전까지 약 50만 명의 한국인들이 노령에 거주하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수의 노령 거주 한국인들은 처음은 의식주의 해결에 급급하였다. 그러나 1907년 고종의 특사 이준(李儁)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상설(李相卨)과 만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갔다가 순국하고, 또 국내에서는 정미칠조약에 의하여 일본인에 의한 한국의 차관정치(次官政治)가 시작되자 노령의 한국인들은 세계사조에 대한 관심과 교육을 통한 구국의 열망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단체는 이러한 계기에 의하여 1907년 설립되었다. 그후 소성(蘇城)에서 김영준(金永俊)이 조직한 공진회(共進會)와 통합하여 1907년 대한청년교육연합회를 조직하고, 소성학교(蘇城學校)를 설립하여 많은 애국인재를 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