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교

  • 종교·철학
  • 단체
  • 일제강점기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시한 종교.
이칭
  • 이칭용화교(龍華敎), 제우교(濟愚敎)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탁명환 (국제문제종교연구소, 종교학)
  • 최종수정 2024년 0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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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시한 종교.

내용

손은석은 서울에서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여 제우교(濟愚敎)라는 종교를 만들어 포교를 시작하였다가, 1920년 교명을 용화교(龍華敎)라 고쳤다.

뒤를 이은 윤경중(尹敬重)은 불교성을 가미, 교명을 대화교라 고치고 새롭게 출발하였다. 윤경중은 여산 출신으로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30세 때부터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한다.

교주가 된 그는 계룡산으로 본부를 옮겨, 미륵부처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종교수도(宗敎首都)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는 한편, 낙토건설사업에 착수, 만주에 토지를 구입하고 그곳에 신도들을 이주시켜 교세가 한때 크게 번창, 포교소가 63곳에 5만의 신도를 가지는 큰 교단이 되었다.

그러나 자체 내의 불화와 장쭤린(張作霖)의 횡포로 만주의 토지는 몰수당하고, 1930년 교주는 사망하였다. 그 뒤 교단은 퇴보하다가 소멸되고 말았다. 처음 천도교사상으로 기반을 이루었으나 대화교 이후부터는 미륵부처를 본존으로 하고, 무량대도(無量大道)를 종지로 하여 성심 · 수도 · 주문 · 견성 · 해탈을 강령으로 하였다.

참고문헌

  •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조선총독부,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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