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손은석(孫殷錫)이 서울에서 창시한 종교.
내용
뒤를 이은 윤경중(尹敬重)은 불교성을 가미, 교명을 대화교라 고치고 새롭게 출발하였다. 윤경중은 여산 출신으로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30세 때부터 지리산에 들어가 수도하였다 한다.
교주가 된 그는 계룡산으로 본부를 옮겨, 미륵부처가 출현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종교수도(宗敎首都)를 건설하려는 꿈을 가지는 한편, 낙토건설사업에 착수, 만주에 토지를 구입하고 그곳에 신도들을 이주시켜 교세가 한때 크게 번창, 포교소가 63곳에 5만의 신도를 가지는 큰 교단이 되었다.
그러나 자체 내의 불화와 장쭤린(張作霖)의 횡포로 만주의 토지는 몰수당하고, 1930년 교주는 사망하였다. 그 뒤 교단은 퇴보하다가 소멸되고 말았다. 처음 천도교사상으로 기반을 이루었으나 대화교 이후부터는 미륵부처를 본존으로 하고, 무량대도(無量大道)를 종지로 하여 성심 · 수도 · 주문 · 견성 · 해탈을 강령으로 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조선총독부, 193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