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애왕 때 이찬(伊飡)의 관등에 있었다. 839년(민애왕 2) 윤정월 김우징(金祐徵)을 받드는 김양(金陽)의 반란군을 맞아 대아찬(大阿飡) 윤린(允璘), 의훈(嶷勛) 등과 함께 민애왕권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나, 대패하였다.
다행이 새로 즉위한 신무왕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살아 남았다가, 문성왕대의 계속되는 반역으로 정국이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849년(문성왕 11) 9월 이찬 김식(金式)과 함께 모반하다가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였다. 이때 대아찬 흔린(昕鄰)도 이에 연좌되어 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