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판본. 1902년 그의 후손 규일(圭一)에 의해 편집, 간행되었다. 권두에 이만도(李晩燾)의 서문과 권말에 김도화(金道和)의 발문이 있다. 규장각 도서, 고려대학교 도서관, 장서각에 있다.
권1에 시 101수, 권2에 소 3편, 계(啓) 6편, 권3에 서(書) 48편, 권4에 잡저 8편, 지(識) 2편, 축문 1편, 제문 7편, 비문 1편, 행장 1편, 전(傳) 1편, 상량문 1편, 권5·6은 부록으로 만사·제문 28편, 유사(遺事) 1편, 행장 1편, 묘갈명 1편, 묘지명 2편, 상언(上言) 2편, 회계(回啓) 1편, 분황고유문(焚黃告由文) 1편, 묘표음기(墓表陰記) 1편, 지(識) 1편, 소지(小識)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사대직겸진시노혁파소(辭臺職兼陳寺奴革罷疏)」는 18세기 중엽에 장례원(掌隷院)의 노비입안(奴婢立案)이 지방관의 노비입안으로 바뀌어 추쇄관(推刷官)을 혁파하자 그 폐해가 더욱 커져, 그에 대해 강력히 개혁을 주장한 소를 올리게 되었다. 정조는 이를 등사(謄寫)해 도신(道臣)들에게 내려 시행하게 함으로써 시노혁파(寺奴革罷)의 계기가 되게 하였다.
「의리소(義理疏)」는 의리로써 치도(治道)의 근본을 삼을 것을 건의한 상소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변에 관계된 사람들과 정조위해사건(正祖危害事件)의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글이다.
잡저 가운데 「금강산유록(金剛山遊錄)」은 과거에 응시하러 서울에 왔다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쓴 기행문인데, 금강산의 경치를 잘 묘사하고 있다. 「일록(日錄)」은 1764년(영조 40)에서부터 1770년까지 저자가 성균관에 거재유생(居齋儒生)으로 있으면서 겪은 사실을 일기로 적어놓은 것이다.
이밖에도 권말에 부록으로 실은 「소회록(疏會錄)」은 저자가 「의리소」를 올려서 사도세자 사건을 일으킨 간당의 처벌을 주장할 때 연명했던 영남유림들의 인명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