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탱화 ()

청도 운문사 독성탱
청도 운문사 독성탱
회화
개념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십육나한 중 첫 번째 존자인 독성존자를 단독으로 그린 그림. 독성도 · 나반존자도 · 수독성도.
이칭
이칭
독성도, 나반존자도, 수독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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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십육나한 중 첫 번째 존자인 독성존자를 단독으로 그린 그림. 독성도 · 나반존자도 · 수독성도.
개설

나반존자도(那畔尊者圖) 또는 수독성도(修獨聖圖)라고도 한다. 사찰의 독성각(獨聖閣)에 단독으로 모셔지거나, 삼성각(三聖閣) 내에 산신도(山神圖), 칠성도(七星圖) 와 함께 봉안된다.

연원 및 변천

독성존자는 부처님의 제자로 16나한(羅漢) 중의 한 분인 빈도라바라타자(賓度羅跋囉惰闍, Pindola-bharadvaja)로 우리나라에서는 독성․수독성(修獨聖)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한다.

빈도라바라타자는 바차국(跋蹉國) 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승려가 되어 아라한과(阿羅漢果 : 성문들이 수행으로 도달하는 성문사과 중 네 번째 경지)를 얻었으나 세속인들에게 신통력을 드러냈다가 부처님의 꾸중을 듣고 염부제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서구야니주에 가서 교화하라는 사명을 받는다.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열반에 드는 것은 허락되지 않아서 영원히 남인도의 천태산(天台山)에서 수행하면서 부처가 열반한 후의 모든 중생을 제도하고자 하는 존재이다.

빈도라바라타자와 나반존자가 동일인임을 알 수 있는 근거는 빈도라바라타자의 내용을 전하는 『십송률』권 37․『청빈두루경』․『법원주림』권42․ 『잡아함경』권23․ 『양고승전』권5「석도안전(釋道安傳)」의 서술과 나반존자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는 우리나라 의식집인 『제반문(諸般文)』「독성재의문(獨聖齋儀文)」과 『작법귀감(作法龜鑑)』「독성청(獨聖請)」의 내용이 서로 일치하는 데서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독성신앙의 발생을 뒷받침하는 문헌자료는 1719년(숙종 45)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에서 『제반문』을 중간(重刊)할 때 의눌(義訥)이 지은 발문(跋文) 내용을 통해 최소한 이 시기 이전에 이미 독성에 대한 신앙이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남선(崔南善)은 절의 삼성각이나 독성각에 모신 독성(나반존자)은 불교의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단군(檀君)을 국조로 모셔온 민족 고유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라는 단군기원설을 주장하였다. 단군을 모셔오던 전통이 단군이 산으로 들어가서 산신(山神) 혹은 신선(神仙)이 되었다는 전설을 받아들이면서 명산에 신당을 세우고 단군을 산신으로 모시거나 선황(仙皇)으로 받드는 것으로 계승되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부터 절의 뒤쪽 고요한 곳에 전각을 세우고 산신과 선황을 같이 모시고 또한 중국에서 들어온 칠성(七星) 역시 같이 모신 것으로, 단군상이 독성상으로 전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독성존자의 기록이 처음으로 보이는 의식문인 『제반문』과 『작법귀감』 등의 의식집이 조선조 숙종 때의 기록인 점을 통해 독성도로 제작된 시점도 이 시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내용

독성도의 도상은 천태산을 배경으로 머리카락은 희고 눈썹이 긴 늙은 비구가 오른손에는 석장(錫杖)을, 왼손에는 염주 또는 불로초를 들고 반석 위에 정좌한 모습이다. 동자가 차를 다리거나 진각거사(眞覺居士)가 함께 나타나는 예도 있다. 이와 같은 도상의 전거는 『제반문』 「독성재의문」과 『작법귀감』 「독성청」 등의 의식문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제반문』의 「독성재의문」에 "산 속에 앉아있거나 소나무 사이를 거닐며, 흰색 납의(衲衣)로 어깨를 반쯤 드러내고 앉아 도(道)를 즐기기도 하니, 눈빛 같이 희고 긴 눈썹은 눈을 덮었다.”라고 하여 독성도의 도상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현황

서울 청룡사 「독성도」(1891년)는 화면 중앙에 산수를 배경으로 머리가 하얗게 세고 흰 수염이 무성한 늙은 비구형의 독성이 왼쪽 다리를 편안히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독성은 오른손으로 염주를 세면서 왼손으로는 늘어진 흰 눈썹을 어루만지고 있는데, 이를 드러내며 찌푸린 얼굴 모습에서 유난히 까다롭고 괴팍한 신령으로 알려진 독성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머리를 둘러싼 투명한 백색 두광은 오랜 시간 스승 없이 독수선정(獨修禪定)하며 도를 깨우친 성자를 상징하는 듯하다. 또 성주사 삼성각 「독성도」(조선 말기)는 화면 향우측 상단에 ‘천태산상나반존자’(天台山上那畔尊者)라고 적혀 있어 뒤 배경이 바로 남인도 천태산임을 암시하고 있다. 독성은 두 팔을 구부려 어깨 위로 들어 손을 좌우로 벌리고 위쪽을 향해 앉아 있으며, 상단에는 동자가 구름을 타고 독성을 향하여 내려오는 모습을 그렸다. 청색 장삼에 붉은 가사를 걸친 독성은 눈썹이 길고 이마가 넓은 데다가 입을 약간 벌리고 위를 향해 눈을 치켜 뜬 모습이 매우 익살스럽다. 보통 천태산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독성도와 달리 화면 상단에 구름과 해만을 간단하게 표현한 점이라든가 중간 부분에 붉은색을 바탕으로 구름만을 묘사한 기법 등 파격적인 구도를 보여준다. 이밖에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경상북도 영천시 은해사 거조암 독성도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 사리암 독성도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는 독성도가 대개 19세기 이후의 것임을 볼 때, 독성을 단독으로 신앙하는 전통은 아마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사원의 구성 요소가 된 독성도는 산신도·칠성도과 함께 삼성각이라 이름 붙인 전각에 함께 봉안되는 것으로 보아 원래 비불교적 성격을 지녔던 것이 불교적으로 변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성도의 주체인 나반존자를 섬기는 나반신앙은 현재 남방불교권 뿐만 아니라 북방불교인 중국, 티베트, 일본 등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한국 불교 특유의 신앙형태로 사찰 내에서는 독성각(獨聖閣)이라는 별도의 전각에 모셔져 있다. 또한 어떤 경론(經論)이나 사기(史記)에서도 나반존자라는 명칭이나 그 행적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만 나반존자에 대한 의식문(儀式文)이 전해져오고 있다.

참고문헌

『찬란한 불교 미술의 세계, 불화』(김정희, 돌베개, 2009)
『한국 회화사 용어집』(이성미·김정희 공저, 다할미디어, 2003)
『그림으로 보는 불교이야기』(정병삼, 풀빛, 2000)
『가산불교대사림』(지관 편저, 가산불교문화연구원, Vol.3, 2000, Vol.5, 2003)
『한국불화의 연구』(홍윤식, 원광대학교출판부, 1980)
「‘獨聖'의 개념정립과 信仰에 관한 硏究」(신은미, 『美術史學硏究』 283 · 284, 한국미술사학회,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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