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865년(고종 2)에 경주 최씨들이 후손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향토 사립교육기관이다. 불로동에서 파계사(把溪寺)로 가는 도로의 산기슭에 위치하는데, 원래의 위치는 현재보다 더 도로 가까이에 있었으나 1972년 도로축조로 인하여 원위치보다 10여m 안쪽인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독암서당의 ‘독암’이라는 명칭은 공산(公山)싸움에서 고려 태조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도주하다가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座巖)이 근처에 있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독좌암과 서당은 팔공산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500여m 떨어져 있다. 이 서당에서는 조선 말기 봉무향약(鳳舞鄕約)을 만든 최상룡(崔象龍)과 순종 때 관찰사를 지낸 최정덕(崔廷德)을 배출하였다.
건축형식은 도리 3개로 결구된 3량가(三樑架)이며,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은 우물마루로 짜여 져 있으며, 좌우에 방을 두었다. 건물의 앞뒤로는 툇마루를 둘렀다.
최씨 문중(門中)에서 세웠으나 문중 자손들은 물론 인근 지역의 자제들까지 교육하여 유능한 학자를 많이 배출한 곳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