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암서당 ()

목차
관련 정보
대구 독암서당 정측면
대구 독암서당 정측면
건축
유적
국가유산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경주최씨들이 후손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당. 교육시설.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독암서당(獨岩書堂)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지정기관
대구광역시
종목
대구광역시 문화유산자료(1984년 07월 25일 지정)
소재지
대구 동구 팔공로68길 36 (봉무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조선후기 경주최씨들이 후손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당. 교육시설.
개설

1984년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865년(고종 2)에 경주 최씨들이 후손의 교육을 위하여 세운 향토 사립교육기관이다. 불로동에서 파계사(把溪寺)로 가는 도로의 산기슭에 위치하는데, 원래의 위치는 현재보다 더 도로 가까이에 있었으나 1972년 도로축조로 인하여 원위치보다 10여m 안쪽인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내용

독암서당의 ‘독암’이라는 명칭은 공산(公山)싸움에서 고려 태조왕건이 견훤에게 패하여 도주하다가 혼자 앉아 쉬었다는 독좌암(獨座巖)이 근처에 있다하여 붙여진 것이다. 독좌암과 서당은 팔공산 진입로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500여m 떨어져 있다. 이 서당에서는 조선 말기 봉무향약(鳳舞鄕約)을 만든 최상룡(崔象龍)과 순종 때 관찰사를 지낸 최정덕(崔廷德)을 배출하였다.

건축형식은 도리 3개로 결구된 3량가(三樑架)이며, 홑처마에 맞배지붕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청은 우물마루로 짜여 져 있으며, 좌우에 방을 두었다. 건물의 앞뒤로는 툇마루를 둘렀다.

의의와 평가

최씨 문중(門中)에서 세웠으나 문중 자손들은 물론 인근 지역의 자제들까지 교육하여 유능한 학자를 많이 배출한 곳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국가유산청 홈페이지(http://www.khs.go.kr/)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