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패낙송 ()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에, 노명흠(盧命欽)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저술한 한문 단편 작품을 수록한 야담집.
문헌/고서
편찬 시기
1770년대
저자
노명흠(盧命欽)
권책수
3책
판본
필사본
소장처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국립중앙도서관 등
내용 요약

『동패낙송(東稗洛誦)』은 조선 후기에 노명흠(盧命欽)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저술한 한문 단편 작품을 수록한 야담집이다.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작가 의식에 기반하여 역사적 향방과 그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정립시킨 진취적 인물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필사 한문본뿐만 아니라 이를 선역(選譯)한 한글본도 다수 전해지고 있다.

정의
조선 후기에, 노명흠(盧命欽)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저술한 한문 단편 작품을 수록한 야담집.
저자 및 편자

노명흠(盧命欽, 1713~?). 본관은 교하(交河), 자는 천약(天若)이다. 1759년(영조 35)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이외 생애의 자세한 부분은 알 수 없다.

서지사항

『동패낙송(東稗洛誦)』은 필사 한문본 및 한글본이 있으며, 또 각각의 이본이 현전하고 있다. 일본 동양문고(東洋文庫) 소장의 한문본 원집(原集) 2책, 속집(續集) 1책의 필사본이 유일한 완본이다. 그 외의 이본으로는 연세대본, 이화여대본, 국립중앙도서관본, 임형택본, 아단문고본, 천리대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선본(善本)이 되는 것은 동양문고본과 연세대본이다.

한편 필사 한글본은 단국대본, 국민대본, 서강대본 등이 있는데, 이것들은 모두 한문본의 일부를 국역한 선역본(選譯本)이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동패낙송(東稗洛誦)』의 저술 시기는 1770년대로 추정된다.

구성과 내용

수록된 편수는 총 56편이고, 각 편에는 제목이 없이 시작될 때마다 항을 달리하여 첫머리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어 구별하고 있다.

수록된 작품들은 여타의 한문 단편집들과 마찬가지로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으며 『청구야담(靑邱野談)』 · 『동야휘집(東野彙輯)』 등과 서로 일치하는 단편들도 있다. 수록된 작품이 모두 한문 단편이라는 것과 문장 표현과 구성이 격조가 높고 뛰어나다는 것 등으로 보아, 편저자는 구전되던 이야기를 단순히 채록한 것만은 아니다. 독특한 작가 의식으로 조선 후기의 역사적 방향과 그 시대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정립시킨 진취적 인물상을 포착하고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 예로 부(富)와 신분 동향을 다룬 작품을 보면, 여주(驪州) 허공(許公)은 몰락 양반의 둘째 아들로 형과 아우를 절로 보내고 아내와 계집종과 함께 생산 활동에 뛰어든다. 10년을 기한으로 가산을 일으키기로 한 그는 길, 자리치기, 논농사, 담배 농사 등 광작(廣作)을 함으로써 마침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그 뒤 그는 활쏘기 연습을 하여 무과에 올라 안악군수((安岳郡守)에 임명되었으나, 아내가 죽자 부임하지 않고 향리에서 일생을 마친다. 몰락 양반이 직접 생산에 뛰어들어 광작을 통하여 재물을 모아 부자가 된다는 것은 시대의 반영임과 동시에 10년간 함께 고생한 부인의 몫으로 논 열다섯 섬지기를 따로 정하는 주인공의 진실한 부부애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 다른 예를 보면 연천(漣川)에 사는 김생(金生)이 추노(推奴)를 나갔다가 뜻밖에 역관(譯官)의 딸과 재물을 얻고 그 여자의 옛 종이었던 수원(水原) 이동지(李同知)의 도움으로 과거에 올라 벼슬까지 하게 된 이야기이다. 종이 부자가 되어 동지의 칭호를 받는 것, 선비가 종의 도움으로 벼슬을 얻는 것, 거벽(巨擘)과 서수(書手)를 시켜 과문(科文)을 작성하고 인정을 써서 과거에 급제한 것 등은 봉건 신분 체제의 붕괴와 문란한 과거 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속집 1책은 한문 단편을 수록한 것이 아니라, 이가환(李家煥)의 친필 수기체로서 역사 · 풍속 · 시문 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임의대로 적어놓은 것이다. 이 수기가 어떻게 『동패낙송』의 속집이 되었는지, 그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 중 11편이 번역되어 『이조한문단편집(李朝漢文短篇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해제도 붙어 있다.

의의 및 평가

『동패낙송』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야담집(野談集)으로 수록된 작품들이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저자의 작가 의식에 기반하여 역사적 향방과 그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정립시킨 진취적 인물상을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야담(野談)의 수용 계층도 서서히 변화하여 기존의 남성들에서 여성들이 야담과 야담집을 많이 향유했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원래의 한문본이 국역되어 한글본이 나타나게 되었다. 『동패낙송』의 여러 선역(選譯) 한글본이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 준다. 한편 『동패낙송』은 이전 시기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비해 작품의 편폭이나 서술 방식 등에서 비교적 완전히 갖춘 한문 단편의 서사 형식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원전

이우성, 임형택 역편, 『이조한문단편집』(일조각, 1978)

논문

남궁윤, 「『天倪錄』과 『東稗洛誦』의 국문번역본 고찰」(『동악어문학』 57, 동악어문학회, 2011)
임형택, 「『동패락송』 연구-야담의 기록화 과정과 한문단편의 성립-」(『한국한문학연구』 23, 한국한문학회, 1999)
정보라미, 「한글본 『동패낙송』 이본의 종합적 연구」(『한국고전연구』 55, 한국고전연구학회, 2021)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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