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헌 임병찬 창의 유적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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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찬 창의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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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의병장 임병찬 관련 건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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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에 있는 대한제국기 의병장 임병찬 관련 건물터.
내용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276-1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은 임병찬이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자 의병을 모아 훈련시켰던 장소로서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다.

이 지역은 해발 400m 이상인 산간 오지이다. 임병찬이 당시 동학의 확산으로 말미암아 공맹(孔孟)의 도(道)가 크게 떨어졌음을 염려하고, 일제의 침탈이 나날이 심하여 가던 1893년(고종 30) 현재 지명 정읍시 산내면 영동마을에서 이 곳 산내면 종성리로 이거(移居)하여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공자의 사당인 ‘영소전(靈召殿)’을 짓고 제자를 가르쳤다.

이는 국운을 바로잡고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서 국가 백년지계의 근본은 오직 교육임을 깨달은 결과였으며, 특히 후일 의병운동을 계획한 가운데 가산(家産)을 정리하여 이 곳 산중에 병기참 및 탄약제작소, 숙영지를 분산 설치하고 의병들의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예를 익힌 곳이다.

임병찬은 최익현을 스승으로 받들고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태인(현재 정읍시 칠보면)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창의하였다. 800여명의 의병 진을 이끌고 태인 · 정읍 · 순창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최익현과 함께 전주 · 남원 양 진위대에 의해 체포되어 대마도 이즈하라에 2년간 감금되었다 석방되었다.

1914년 고종황제의 ‘독립의군부사령총장’이라는 밀명을 받고 독립의군부의 전국적인 조직을 하고 활동을 전개하다 보안법위반이라는 혐의로 체포되어 거문도에서 구금생활을 하던 중 1916년 단식으로 비분하여 절의를 지켜 순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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