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는 거래관계에 들어가는 제삼자에 대하여 그 권리의 내용을 명백히 하고 예견할 수 없는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하여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는 등기 외에 광업등록·어업등록·특허등록·자동차등록·주민등록·의료인등록 등의 등록이라고 하는 제도가 있다.
두 가지를 합쳐 넓은 의미에서 등록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고(등록세법), 광업법·어업권에서는 등록으로서 등기에 갈음한다고 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등기와 등록은 구별된다.
등록이란 행정관청 등이 일정한 사항을 등기부 이외의 공부에 기재하는 것을 말한다. 등기는 오로지 사권(私權)에 관한 공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등록은 그 밖에 의료인등록에서처럼 면허의 방법으로, 또는 자동차등록에서처럼 권리발생의 효력 외에 운행을 못하게 하는 등 여러 가지 행정적 목적을 포함하는 수도 있다.
등기제도는 부동산등기를 기본으로 하여 발전된 것으로서, 단순히 등기라고 하면 부동산등기를 일컫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등기의 종류로서는 부동산등기·선박등기·공장재단등기·입목등기 등 권리에 관한 등기, 부부재산약정에 관한 등기와 같은 재산귀속에 관한 등기, 상업등기와 법인등기 등 권리주체에 관한 등기가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입안(立案)이라는 부동산거래증명제도가 있었으나 근대적 등기제도는 1906년에 공포, 시행된 <토지가옥증명규칙>에서 비롯된다. 그보다 앞서 1893년(고종 30)부터 지계(地契)와 가계(家契)라는 제도가 있었으나 널리 시행되지 못하였다.
<토지가옥증명규칙>의 시행을 위하여 1906년 시행세칙이 나왔는데 이 제도의 주요 내용을 보면, 토지나 가옥을 매매, 증여, 교환, 전당할 경우에 당사자가 계약서를 작성하여 통수나 동장에게 인증을 받은 뒤 다시 부윤 또는 군수에게 제출하면, 진정한 권리자인지의 여부, 당사자의 능력, 부동산의 동일성, 계약의 유효성 등을 심사하고 틀림없다고 확인된 경우에, 비치한 토지가옥증명부에 기재하고 당사자에게 계약서를 교부하였다.
이 증명제도는 공시제도로서 불비한 점이 많아 1908년에는 <토지가옥소유권증명규칙>으로 바꾸기도 하였으나, 완벽한 제도로 발전되지 못한 채 국권을 상실하고 말았다. 일제는 1912년 <조선민사령 朝鮮民事令>과 함께 <조선부동산등기령>을 발포하여, 부동산의 등기에 관하여 특별규정이 없는 한 일본의 <부동산등기법>에 따르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 나라에는 토지대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동산등기제도를 실시하기가 어렵게 되자, 1912년 <조선부동산증명령>을 제정하여 부동산등기령이 시행될 때까지 보충하여 적용하였다. 민족항일기 초기에는 이처럼 등기제도와 증명제도가 병존하고 있었는데, 등기제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는 토지대장의 완비가 요건이었다. 이를 위하여 실시하게 된 것이 이른바 토지조사사업이다.
실질적으로는 한국인 소유의 토지를 약탈하기 위한 조사였는데, 1912년 8월<토지조사령>을 발포하여 토지의 조사와 소유자의 사정에 착수하였다. 사정은 토지소유자의 신고에 따른 토지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소유권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토지조사가 진행되던 1914년 4월 <토지대장규칙>을 정하여 조사 사정의 결과를 토대로 하여 토지대장을 작성하고, 다시 이를 기초로 하여 등기부를 작성하게 되었다.
토지조사가 완결된 것은 1917년 12월이었고, 이듬해에는 우리 나라 전체에 <부동산등기령>의 시행을 보게 되었다. 토지조사가 끝나갈 무렵부터는 부분적으로 임야조사를 하게 되고, 1918년에는 <조선임야조사령>을 공포하여 전국적인 임야조사에 들어갔다. 이 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임야대장이 만들어졌는데, 임야조사사업이 완결된 것은 1935년이었다.
이상과 같은 경과를 거쳐서 유럽대륙의 근대적 등기제도를 모방한 일제의 부동산등기제도가 우리 나라 전역에서 행해지게 되었다. 일제 등기제도의 의용은 1945년 광복 후에도 약 15년 동안 계속되다가 1960년 1월 1일<부동산등기법>이 공포, 시행되고 그 시행규칙도 마련되기에 이르렀다. 등기제도는 공시제도의 하나이므로 이를 어떻게 조직하느냐에 따라 거래의 안전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점이 중요시된다. 첫째, 일정한 어떤 사실 또는 법률관계, 예를 들면 부동산소유권의 이전은 당사자의 의사표시 외에 이를 등기하지 않으면 성립되지 않거나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는 성립요건주의를 취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당사자의 의사표시만으로 성립 또는 그 효력이 생기고 이를 제삼자에 대하여 주장하는 데 등기를 필요로 하는 대항요건주의를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우리 나라는 예컨대 회사의 설립과 부동산에 관한 법률행위로 인한 물권의 득실변경에 관하여는 성립요건주의를 취하고 있다. 부동산의 등기에 관하여 구법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대항요건주의에 따르고 있었으나, 현행 <민법>에서는 독일법의 성립요건주의로 바꾼 것이다.
등기의 강제가 보다 철저하고 직접적이며 당사자 사이의 효력발생과 제삼자에 대한 효력의 발생을 획일적으로 다루는 성립요건주의가 거래의 안전을 위한 공시제도로서 바람직하다고 한다. 실제문제로서 등기는 있으나 그에 대응하는 일정한 사실 또는 법률관계가 실질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문제이다.
이러한 경우 등기를 신뢰하고 거래한 자를 위하여 등기부에 기재된 그대로의 진실한 권리관계가 존재한 것과 같은 법률효과를 인정하는 것이 공신의 원칙이다. 거래의 안전과 원활에 이바지하는 등기제도의 이상은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해야 이룰 수 있다. 독일·스위스, 그리고 토렌스식 등기제도에서는 모두 이 공신의 원칙을 채택하고 있으나 우리 나라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등기 공무원에게 형식적 심사권만을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등기원인에 관한 특별한 공증을 요구하고 있지 않아서 실제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등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등기에 공신력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부정등기를 막기 위하여 등기신청의 접수와 관련해서 실질적 심사주의를 채택하거나 등기신청서류에 대한 특별한 공증을 요구하고 또 공신력을 인정하는 결과, 진실한 권리자가 권리를 잃어 불의의 손해를 입게 될 때 이를 배상하는 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의 현행 부동산등기제도의 중요한 특질을 보면, 등기부에는 토지등기부와 건물등기부가 있고, 이들 등기부에는 한 필의 토지 또는 한 동의 건물에 대하여 한 용지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즉, 권리의 객체인 하나의 부동산을 단위로 편성하는 물적편성주의를 취하고 있다.
다음 허위의 등기가 행하여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등기신청이 있을 때에, 그 신청이 과연 적법한가 또는 부적법한 것인가를 심사하는 등기 공무원의 심사권에 관하여는 실질적 심사주의와 형식적 심사주의의 대립이 있다. 전자는 등기신청의 실질적 이유 내지 원인의 존재와 효력까지도 심사하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등기절차상의 적법성 여부에 심사를 한정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등기법은 등기 공무원에게 형식적 심사권만을 부여하고 있어서 절차는 신속하나 허위의 등기 내지 부실한 등기를 막을 길이 없는 흠이 있다. 그러한 단점을 시정하는 방법으로서 등기원인이 되는 서면에 대한 공증을 요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으나, 현행 공증인제도로는 시기적으로 그 실시에 어려움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