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성(龍馬山城)·창원성(昌原城)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조선을 침략한 왜군들이 경상남도 해안지대에 쌓은 20여개 왜성(倭城) 중의 하나로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지고 공원화되어 석축의 일부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상륙한 왜군은 1594년(선조 27) 봄에 부산·경상남도 지역에서 대대적인 축성에 착수하여 전투의 장기화에 대비하였다.
즉 평양성 패전과 수군의 궤멸 이후 후퇴작전의 기지로 삼기 위하여 서생포(西生浦)에서 웅천(熊川)에 이르기까지 18개의 왜성을 쌓았다. 또 정유년(丁酉年)에는 창원에서 전라남도 순천에 이르는 다도해에 5개의 성과, 동해안에 울산성을 신축하였다.
마산왜성은 1592년 4월 부산에 상륙한 왜장 다데(伊達政宗)가 김해성(金海城)을 함락한 뒤 창원을 거쳐 마산으로 쳐들어와 용마산을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축성공사를 시작하였으며, 그 뒤 1597년 10월 정유재란 때 왜장 나베시마(鍋島直茂)와 그의 아들이 본격적인 축성공사에 착수하여 12월에 완공하였다.
일본식 성곽은 대개 평야나 해안지대에 돌출한 산정(山頂)을 깎아 평평하게 하여 가장 높은 곳에 이중 삼중으로 된 본환(本丸)·이지환(二之丸)·삼지환(三之丸)을 설치하고 이 아성을 둘러싼 외곽선에 성곽을 높이 쌓되 성 전체를 몇 구획으로 나누어 각 구역이 독립하여 전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같은 축성방식은 우리나라의 재래식 산성과는 전혀 다른 일본식 축성방법이다.
이 성은 한때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왜성이라는 이유로 해제되었다. 일본 사서(史書)에는 이 성을 창원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성 외곽에 함선이 직접 닿았다고 하였으나 그와 같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