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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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부산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이 왜군의 선봉을 맞아 맨 처음 격전을 벌였던 성곽.
이칭
  • 이칭부산진성(釜山鎭城)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반영환 (서울신문사, 언론학)
  • 최종수정 2023년 1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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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임진왜란 당시 부산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이 왜군의 선봉을 맞아 맨 처음 격전을 벌였던 성곽.

내용

부산포성(富山浦城)이라는 명칭은 『신동국여지승람』에 보인다. 석성으로서 둘레 511.8m, 높이 4m라고 했다.

임진왜란 때 부산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이 왜군의 선봉과 싸워 장렬하게 전사한 첫 격전지이다.

1592년(선조 25) 음력 4월 13일 일본의 조선원정군 제1진 1만 8700여 명이 부산 앞바다에 쳐들어오자 정발은 부산진성을 굳게 지켰다. 왜적은 14일 새벽 짙은 안개를 틈타 지금의 우암동쪽으로부터 일시에 상륙하여 부산진성을 포위한 뒤 삼면으로부터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정발은 성 안의 군민과 더불어 끝까지 항전하다가 전사했으며 마침내 부산진성은 함락되었다 한다.

현재 부산진성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며 자성대(子城臺)라고 부르는 부산진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 - 『부산(釜山)의 문화재(文化財)』(부산직할시, 1982)

  • - 『충렬사정화지』(부산직할시,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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