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소총통의 형식에 속하는 휴대용 화기를 ‘승자총통’이라고 이름지었는데,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 총통은 1575년(선조 8)에서 1578년(선조 11) 사이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지내고 있던 김지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이 만력기묘명승자총통은 승자총통 중에서도 초기의 제작품이며 죽절(竹節)은 6절(節)로 되어 있는 청동제 휴대용이다.
병부(柄部)에는 음각으로 제조연대와 통명(筒銘) · 무게 · 장인(匠人)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약실(藥室) 쪽 3절은 간격이 좁고, 총구 쪽 3절은 넓은 형태이며, 병부의 나무손잡이는 오래되어 손실되었다.
그러나 현존하는 승자총통 중에 가장 오래되었고 제법도 상당히 숙련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총통의 죽절처리로 약실 쪽의 간격을 총구 쪽보다 좁힌 것은 화약의 폭발위력을 염려하여 터지지 않도록 한 것이며, 적이 가까이 와서 백병전이 벌어지면 곤봉으로도 사용할 수 있게끔 양각으로 한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전체길이 56.8㎝, 통길이 34.8㎝, 입지름 4㎝, 무게 4.5㎏이다. 이 총통에는 ‘萬曆己卯四月日造 勝字七斤六兩 匠揆加(만력기묘4월일조 승자7근6량 장규가)’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 명문에 의하여 1579년에 제작된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휴대용 화포를 그 당시 만들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병기제조사에 길이 남을만한 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