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때의 재상 맹사성의 묘로 묘소 앞에는 묘비를 비롯한 상석, 향로석, 문인석, 동자상, 망주석 등이 갖추어져 있다. 주변에 그가 즐겨 탔던 소의 무덤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도 광주시 직동 맹씨 문중 소유의 산 중턱에 위치하며, 1974년 9월 26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맹사성(孟思誠, 1360~1438)은 호가 고불(古佛)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조부 맹유(孟裕)는 두문동(杜門洞) 72현 가운데에 한 명이다. 아버지 맹희도(孟希道)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희도부상(希道負上)」에 실릴 만큼 효자였으며 끝내 조선에 출사하기를 거부했던 인물이다. 맹사성은 최영장군의 손녀사위로 풍수와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이며, 세종대에 좌의정을 지낸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묘는 맹씨 문중의 산인 맹산(孟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봉분은 장대석(長臺石)을 이용한 장방형(長方形)의 호석(護石)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것은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봉분 조성 방법으로 조선 초기까지 계속된 양식이다.
봉분 앞에는 1438년(세종 20)에 건립된 조선 초기 양식의 화관석(花冠石) 묘비가 세워져 있다. 봉분과 묘역이 다소 협소한 감이 있으며 사성(莎城)은 묘에 비하여 높은 편이다. 봉분 앞에는 묘비, 그 앞에는 근래에 새로 제작한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이 있다.
봉분 우측에는 1959년 후손들이 새롭게 제작한 묘비가 있다. 묘역 앞의 좌우로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고, 1968년에 새로 제작한 망주석(望柱石)과 동자상(童子像)이 각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한편 묘소 인근에는 흑기총(黑麒塚)이 있는데 이것은 맹사성이 즐겨 탔던 검은 소의 무덤으로 그가 죽자 따라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