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권 18책. 목판본.
원래 1615년에 그 편찬이 완성되었으나, 간행에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각 도의 경제력에 비례하여 전라도 6책, 경상도 4책, 공홍도(公洪道 : 충청도) 4책, 황해도 3책, 평안도 1책씩 분담하여 1617년에 그 간행이 완성되었다.
이 책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삼강행실도 三綱行實圖≫·≪속삼강행실도 續三綱行實圖≫의 속편으로서, 임진왜란 이후에 정표(旌表)를 받은 충신·효자·열녀 등을 중심으로 하여 상·중·하 3편으로 편찬된 ≪신속삼강행실도 新續三綱行實圖≫를 토대로 하고, ≪여지승람≫ 등의 고전 및 각 지방의 보고자료 중에서 취사선택하여 1,000여 사람의 간략한 전기(傳記)를 만든 뒤에 선대의 예에 따라서 각 한 사람마다 1장의 도화(圖畫)를 붙이고 한문 다음에 국문언해를 붙였다.
원집 17권과 속부 1권으로 되어 있는데, 권1∼8은 효자, 권9는 충신, 권10∼17은 열녀에 대하여 다루고 있으며, 속부는 ≪삼강행실도≫·≪속삼강행실도≫에 실려 있는 동방인 72인을 취사하여 부록으로 싣고 있다.
이 책의 편찬은 특히 임진왜란을 통하여 체득한 귀중한 자아의식 및 도의정신의 토대 위에서 출발된 것으로 임진왜란 발발 이래의 효자·충신·열녀 등의 사실을 수록, 반포하여 민심을 격려하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제목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그 소재나 내용이 동국, 즉 우리 나라에 국한되면서 그 권질(卷帙)이 방대하다는 특징을 가질 뿐 아니라, 계급과 성별의 차별 없이 천인계급의 인물이라 하더라도 행실이 뛰어난 자는 모두 망라하였다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 보이는 국어사적인 특징으로는 표기상 ㅿ자의 쓰임(ᄆᆞᄉᆞᆯ, ᄆᆞᅀᆞᆸ, 아ᅀᆞ), 합용병서(合用並書)의 ㅄ계, ㅂ계, ㅅ계의 공존(○뎌, ○디다, ᄭᅥ디니라, ○려, ○려, ᄭᅳ리오고 등)과 ○(○)의 출현을 들 수 있으며, 각자병서(各自並書)의 표기는 ㅃ(빠뎌), ㅆ(써, 以) 등이 있다.
음절말 ᄠᅳᆷ의 표기가 보이며(ᄒᆞᆰ○이, ○애, 무덤이○이다), ‘-ᅌᅵ다’ 류의 경우 주로 ㅇ으로 표기되었다(ᄒᆞ○이다, 일워징이다, 가지링다).
음절말 ㅅ과 ㄷ의 표기가 매우 혼란되어 있으며, 어간말 자음의 중복 표기가 많이 나타난다(약글, 집비, 남마ᄯᅩ다, 눈니라도). 그리고 강세첨사(强勢添辭)의 경우 문헌의 특징에 따라 ‘-사’로 되어 있고(후에사, 말아사), ‘프서리, 손소’와 같은 용례도 보인다.
어두음절(語頭音節)에서 ‘·’의 동요도 보인다(흙덩이, 흘글). 16세기부터 나타나는 모음간의 유기음이나 경음으로는 ‘겯ᄐᆡ’, ‘읍프되’, ‘받○’, ‘잇ᄯᅥ니’, ‘잇ᄭᅥᄂᆞᆯ’ 등이 있으며, 어두경음화 현상의 용례는 ‘ᄭᅮ짇고’, ‘싸ᄒᆞ라’, ‘ᄭᅳ어’, ‘○고(洗)’ 등이 있다.
‘이’움라우트(Umlaut) 현상도 보이며(일즙 우디 아닐 제기 업더라), 자음동화작용도 간혹 표기상에 반영되어 있다(괄로, 官奴 ; ○명, 特命).
어두격음화현상의 예는 ‘칼’, ‘ᄑᆞᆯ흘’, ‘코’등이 있는데, 이들은 이미 16세기에 나타난 것들이며, 어간내에서 보인 ‘ᄆᆞᆫ치며’, ‘속켜’, ‘언턱’ 등은 방언적 요소로 볼 수 있다.
일반적인 방언 어휘로서는 ‘가차이’, ‘게얼리’, ‘아젹에’, ‘애래셔(下)’, ‘크기(크게)’, ‘초개집’, ‘지애비’, ‘외히려’, ‘제혀(저히어)’ 등이 있다.
그리고 사람 이름에 붙는 접미사 계열로 ‘-가히’, ‘-개’, ‘-동’, ‘-동이’, ‘-셰’, ‘-진’, ‘-합’ 등이 쓰였고, 남자이름에만 특히 ‘-쇠’, ‘-산’을 썼고 여자이름에는 ‘-덕이’, ‘-비’, ‘-금’, ‘-무’, ‘-종’ 등을 사용하였다.
희귀한 어휘로는 ‘구리틴대(倒之)’, ‘맛갓나게(具甘旨)’, ‘덥두드려(撲之)’, ‘비졉나고(避)’, ‘초어을메(初昏)’, ‘ᄃᆞᆯ와이(酣)’, ‘칼그ᄆᆞ치(劒痕)’ 등이 있다.
이외에 문법적인 특징도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의미의 변화를 보여주는 어휘도 상당수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근대국어연구에 매우 귀중한 문헌이며, 동시에 중세국어와의 교량적 구실을 하는 문헌이라고도 하겠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1959년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인하였고, 1978년에 대제각(大提閣)에서 이를 다시 영인하였다.